사람을 올바르게 교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규율을 가르치거나 죄를 뉘우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 믿음이 따뜻한 손길로 전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는 시작됩니다.

그 믿음과 사랑을 평생에 걸쳐 온몸으로 실천해 오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故 유양자 선생님 !

지난 19일,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교도관으로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선생님의 삶을 지켜본 저는,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위대한 사랑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유양자 선생님은 신실하신 천주교 신자로 전주교도소 교정위원으로 한평생 활동하시며, 수용자 돕기와 출소자 자활 지원을 천직으로 여기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삼풍화학이라는 작은 세제공장을 직접 운영하셨습니다. 음식점과 소규모 사업장에 세제를 공급하며 얻은 소박한 수익을 모두 수용자들을 위해 내놓으셨습니다. 장기 수용자들의 영치금 지원부터 상담활동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모든 수입은 고스란히 그들을 위한 밑천이 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은 흔히 번호로 불립니다. 하지만 유양자 선생님은 자매상담실에서 그들과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며, 사랑으로 그들을 보듬어 안아주셨습니다. 

때로는 자매 같은 상담자로, 때로는 어머니 같은 위로자로 항상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특히 가족과의 연락이 끊어진 장기수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영치금을 지원하고, 편지를 통해 지속적인 마음의 교류를 이어가셨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 한마디, 정성스럽게 준비해 오신 간식 하나에도 수용자들은 진심을 느꼈습니다. 그 진심 앞에서 그들은 서서히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교도소 안팎에서 저는 그런 변화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과거에 대한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했던 수용자들이 유양자 선생님과의 상담 후 눈물을 흘리며 "저도 이제 사람답게, 올바르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의 진심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법도 제도도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유양자 선생님만이 가지신 진정한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은 출소와 함께 끝나지 않았습니다. 직접 새벽에 교도소 앞으로 마중을 나가 출소자들을 당신의 공장으로 데려오셨습니다. 목욕탕에 데려가서 씻기고 새 옷을 사 입히며, 임시 거처와 일자리까지 마련해 주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결혼까지 주선해 주신 일입니다. 100여 명이 넘는 출소자들이 선생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당당한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사회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아라서 갈 곳이 없는 출소자들이  자녀와 부인까지 데리고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어머니 덕분에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드리는 이들을 보며, 정작 선생님의 친딸과 손자들은 늘 뒷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유양자 선생님은 말없이 묵묵히, 그러나 누구보다 성실히 수용자 교정교화와 출소자들의 자활활동에 헌신하셨습니다. 교도소라는 공간이 단순한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회복과 희망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땅에 남기신 가장 큰 유산은 제도나 건물이 아닙니다. 바로 다시 일어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며, 상처를 치유의 힘으로 승화시킨 수많은 사람들의 새로운 인생이야말로 선생님이 세상에 남기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선생님, 이제는 고단한 삶을 내려놓으시고 이제 부디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선생님께서 돌보셨던 수많은 이들이 오늘도 당신을 기억하며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교정 업무에 종사했던 교도관과 수용자 등 모든 이들도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헌신적인 삶에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품고 그 길을 따라 쉬지 않고 걸어가겠습니다.

선생님의 고귀한 사랑의 발자국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수용자와 출소자를 위해 진심을 다하신 선생님의 희생과 봉사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천국에서 편히 쉬시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만호 / 전주교도소 전 교도관, 전주매일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