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도 어느덧 하순이다. 세상 모든 식물들이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그 초록 사이로 전국 산하를 하얗게 물들이는 꽃이 있다. 바로 아카시 꽃이다. 마치 하얀 실타래를 매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디마다 작은 등불을 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차를 몰고 한적한 외곽으로 들어서면 달콤한 아카시 꽃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도로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서 함박눈처럼 꽃이 피었다. 그 향기 따라 유년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카시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꽃이다. 아카시 꽃이 피면 누구든 낭만에 젖어 시인이 되고 싶어진다. 해질녘이면 아카시꽃 향기가 가슴으로 전해지며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는 아카시가 많다. 허물어진 언덕바지에까지 아카시나무 천지다. 내 고향에도 야트막한 산밑이나 냇가 방둑에 아카시나무가 줄지어 있다. 해마다 모내기 철이면 아카시 꽃향기가 매혹적이다. 아카시 향은 은은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달달함을 느낀다. 

가난했던 시절 아카시 꽃을 따먹었다. 꽃잎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기도 했다. 아카시 꽃을 한주먹 따서 입속에 넣고 씹으면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지면서 씹히는 식감이 부드럽다. 일부에서는 아카시 꽃잎으로 전을 부쳐 먹거나, 또는 아카시꽃튀김과, 아카시떡을 만들어 먹었다. 꽃전이나 꽃튀김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아카시꽃 특유의 은은한 향과 달콤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일 것이다. 

봄철 대표적 밀원(蜜源) 나무로 ‘아카시꿀’을 꼽는다. 그 향 또한 일품이다. 우리나라 꿀의 60~70%는 아카시꿀이라고 한다. 아카시꽃술은 신장염과 방광염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카시 씨앗 기름은 결핵 예방에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아카시 꽃은 말려 차로 마시면 염증에 좋은 천연 항생제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아카시 꽃은 다양한 약재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카시’를 ‘아카시아’로 잘못 알고 있다. ‘아까시나무’와 ‘아카시아나무’는 같은 장미목 콩과에 속하지만, 학명은 물론이고 영문명, 잎·꽃 형태, 개화 시기, 특징 등이 모두 다른 식물이다. 어릴 적부터 아카시아라고 불렀던 습관인지 아카시라는 걸 알면서도 곧장 아카시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한국 동요 중 하나인 ‘과수원 길’에서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운운하는 게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실제 아카시아는 대부분 노란 꽃이 피며, 아까시나무에서는 하얀 꽃이 핀다. 그러나 흔히 쓰인다는 이유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로 부르는 것을 인정해 버려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카시나무의 원산지는 미국 동부지역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꽃은 5~6월에 핀다. 작은 흰색 꽃이 모여 포도송이처럼 길게 늘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아까시나무꽃은 향이 매우 강해 벌과 같은 곤충들을 모여들게 해서 양봉업자들이 좋아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꽃말은 ‘비밀스러운 사랑’이다. 

반면 호주가 원산지인 아카시아나무는 노란색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미모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말은 ‘우정’이다. 노란 꽃을 매우 풍성하게 피우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많이 식재된다. 단, 아열대 식물이므로 한국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 

5월의 초록 바람에 아카시 꽃이 다발다발 석등처럼 빛난다. 꽃잎 사이에 핀 해맑은 웃음, 마치 팝콘을 터트려 나무에 매달아 놓은 듯 개천 둑방과 도로가에 하얗게 핀 아카시꽃이 가는 봄을 붙잡고 있다. 

신영규 /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