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선박사고를 부실하게 통제해 이른바 '골든타임'(사고 발생 후 30분)을 허비하고 운항관리 규정이나 선박 전입신고 관리를 소홀히 하는 등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해경 책임론이 비등하고 있다.

 고위 간부의 부적절한 처신까지 겹치면서 해경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최초 신고 학생에 '위도 경도 타령'

 목포해경은 세월호가 급선회 후 표류하기 시작한 16일 오전 8시52분께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며 다급히 구조를 요청한 학생에게 "배의 위치, 경도(경도와 위도)를 말해 주세요"라고 물었다.

 이에 학생이 당황한 듯 "네?"라고 답했으나, 해경은 또 다시 "지금 침몰 중이라는데 배 위치를 말해주세요. 배 위치, 지금 배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재차 질문했다.

 신고자가 "지금 이곳은…"이라고 말을 더듬자 다시 해경은 "모르신다고요? GPS 경위도 안 나오나요. 경도와 위도"라고 계속해서 캐물었다. 학생이 "섬이 보이긴하는데"라고 말을 흐리자 해경은 그제서야 출항지, 배 이름, 배 종류, 위기 상황 등을 물었다.

 '배가 침몰한다'고 최초 신고한 건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생사 불명)으로, 이 학생은 오전 8시52분께 119에 사고사실을 신고했고, 119 측은 해상 조난인 점을 알고 서둘러 목포해경과의 3자 통화를 연결했다.

 이 과정에서 119는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신고지점이 진도군 조도면 서거차도 인근 해역이라는 사실을 해경에 알려줬으나, 해경은 신고자인 학생을 붙들고 위도와 경도만 묻느라 골든 타임을 4∼5분 가량 낭비했다.

 심지어 해경은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해경이 우왕좌왕하는 하는 사이, 진도VTS는 9시6분 세월호 항해사의 신고를 받은 제주VTS로부터 신고 사실을 전해들었다. 첫 출동한 해경 경비정도 공용채널(16번)이 아닌 진도VTS의 고유채널(67번)로 교신을 시도, 선박 내부상황도 모른채 구조에 나섰다.

 ◇진도VTS 부실 관제

 2010년 7월 국토부 해양항만청으로부터 해경으로 이관된 진도VTS의 '부실 관제'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진도VTS는 사고 당일 오전 7시8분, 세월호가 관제구역에 진입한 사실을 레이더와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를 통해 확인했음에도, 전입 신고도 하지 않은 세월호를 제때 제재하지 않았다. 묵인 의혹이 이는 이유다.

 "세월호는 '관심 선박'이어서 주변 500m에 장애물 등이 접근하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도메인 워치'을 선박에 설치해 뒀지만 위험신고는 없었다"는 게 해경의 입장이지만 세월호가 항로를 급선회하고 반대 방향으로 운항했는데도 통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해경은 "같은 해역을 지나는 선박이 많아 모든 선박의 항적을 실시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관제 능력 부족과 근무 기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사고 해역이 평소 조류가 강하고 사고도 잦은 요주의 항로였다는 점에도 해경의 해명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운항관리규정 부실 심사 의혹

 세월호 운항관리 규정은 A4용지 44쪽 분량으로 안전관리 조직을 비롯해 출항과 여객 승하선, 차량 화물 적재 방법, 해상사고 발생시 조치, 안전운항 및 해양사고 방지교육 등을 담고 있다. 이 규정은 해경과 해운조합, 항만청,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이 포함된 위원회에서 심사해 지난해 2월25일 인천해경이 최종 승인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이 공개한 운항관리규정에서 선원들의 역할을 명시한 비상 부서 배치표는 고작 2쪽에 불과하고, 비상부서 배치표에는 직책별 임무와 비상신호 체계가 전부다. 승객의 대피장소는 명시돼 있지 않았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규정을 심사하는데 반려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세월호 참사가 커진 데에는 부실한 규정과 관행적으로 이를 승인한 당국의 잘못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사고 당일 '선박 인양' 공문 논란

 목포해경은 사고 당일 '침수·전복 선박 세월호 구난 명령 통보'라는 공문을 통해 선사측에 "2차 사고와 오염발생 때 큰 피해가 우려된다"면서 선박 인양을 요구했다. 해경은 "대형 크레인을 갖춘 샐비지(Salvage) 선박을 동원, 신속히 인양한 뒤 조치사항을 통보해 달라"고 청해진해운에 요구했고, 군청에는 "선박 소유자로 하여금 침몰 선박이 빨리 인양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통보했다.

 해경의 이같은 공문은 실종과 사망자가 속출한 상황에서 구조보다는 인양을 재촉하고 있어 논란의 소지를 안겨주고 있다. 또 인양 작업이 시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 참사를 파악하지 못한 안이한 대처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해경 관계자는 "선박 사고가 발생하면 법에 의해 진행되는 통상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해경 간부 "80명 구했으면 대단" 막말

 목포해경 A(57) 과장은 사고 이튿날인 지난 17일,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승객 구조에 대해 초기 대응이 미진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해경이 못한게 뭐가 있느냐.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또 21일에는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재진들이 있는 가운데 목포해경 홍보실 직원들을 질책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왜 내 전화를 안 받냐 이 XX들아. 내 번호 찍히면 받아야 할 거 아냐"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양경찰청은 부랴부랴 A과장을 직위해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