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중 2000년 9월 15일에 임명된 권성, 김효종 헌법재판관 이후 임기 공백 없이 헌법재판관이 임명된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우려되었던 헌법재판소 ‘10월 공백’은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 효력정지를 통해 일단락되었으나, 국회가 헌법재판관 제도를 정쟁의 도구로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실이 제공한 ‘역대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임기 공백 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회가 총 19명의 헌법재판관을 추천하는 동안 9번의 임기 공백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10월 17일자로 임기가 만료된 이종석·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의 후임자 인선 역시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서 임기 공백 발생 사례는 총 12회로 늘어나게 됐다.

 국회의 헌법재판관 추천권이 처음부터 악용된 것은 아니었다. 1988년 헌법재판관 추천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이후 2003년까지 15년 동안 전임자 임기 만료 이전에 추천 절차를 마무리하여 헌법재판관 임기 공백이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4년 이상경 재판관 추천 과정부터 전임자 임기 만료 후 약 한 달간의 임기 공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04년 이후 국회 추천으로 임명된 헌법재판관 10명 중 전임자 임기 만료일에 맞춰 임명된 사례는 2006년 목영준 재판관이 유일하다.

 또한, 전임자의 임기 만료 전 인사청문회조차 진행되지 않은 경우도 다수였다. 2000년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이후 임명된 국회 몫 헌법재판관은 총 12명으로, 이 중 전임자의 임기 만료 전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사례는 7회이다. 반대로 전임자의 임기가 종료된 후에야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사례는 5회로,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종석·이영진·김기영 재판관 후임 인사청문회까지 포함할 경우 그 횟수는 8회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조배숙 의원은 “국회가 가진 헌법재판관 추천권은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 정신을 존중하기 위함이지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다”라며 “현행법의 허점을 악용하여 임기 공백을 유도하는 악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공백 발생 시 전임 재판관 임기를 연장하는 보궐제도나 예비재판관 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배숙 의원은 “선배 의원들이 지켜온 관례를 무시한 채 헌법재판관 두 명을 추천하겠다는 민주당의 오만과 독선으로 후임 헌법재판관 인선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헌법재판관 추천을 독식하려는 민주당 모습은 개헌 이래 유일하게 원내 1당을 근거로 추천권 2장을 독식한 30년 전 민주자유당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만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