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향수’와 육영수 여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옥천’이 나의 고향이다. 기억하는 주소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 판수리 295번지다. 한 마디로, 나는 촌놈이다. 충청도를 떠나 전주에서 생활한 지 40여 년이 지나가 버렸다. 고향의 아련한 추억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 아버지, 인삼과 관련한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7남매의 여섯 번째 아들인 나는 정말 가난이 지긋지긋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빨리 중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소작농 아버지의 억척스러운 삶의 여정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를 시골에서 보내야만 했다.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옥천에서 가까운 금산은 인삼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인삼 농사가 옥천에서 시작되어 많은 농작지가 인삼밭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 아버지는 이웃들의 인삼 농사로 돈벌이를 하셨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는 가방에서는 인삼 뿌리가 우리 가족을 반갑게 해 주었다. 쌉쌀하고 맛이 없어 뱉어내기 일쑤였던 인삼, 찹쌀과 약간의 소금을 넣어 푹 끓여서 큰솥 가득 준비해 주시던 어머니의 배려가 인삼과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다. 

‘왜, 이 맛없는 것을 먹는 다냐?’,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나는 안 먹을란다’ 등 우리 형제들은 서로 먹으라고 떠밀기 일쑤였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아버지를 화나게 하셨고, 결국 몸이 제일 약한 내가 인삼을 주로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을에서 3년 근 인삼을 캐는 날이면 잔칫날이었다. 금산에서 인부들이 와 인삼을 온종일 캐고 나면, 그 인삼밭에는 마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부스러기 인삼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윗집의 순님이, 핵종이, 동수, 동원이, 영자, 미숙이 등 마을 사람들은 호미와 삽, 괭이 등으로 무장하고 온 가족이 인삼 찾기에 밤이 어둡도록 땅을 파헤치고 헤쳐 댔다.

여기저기서 운이 좋아 인삼 원래 모양 그대로 뿌리를 캐면, 산삼을 캔 것처럼 좋아하고 부러워하며 호미질에 더울 경쟁적으로 열중하였다. 그 결과는 너무나 풍성한 인삼이 바구니에 가득 담기는 기쁨을 선물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약은 구경도 못하던 그 시절, 우리의 보약은 바로 수확을 마친 인삼밭을 파헤치며 모아온 인삼 뿌리였다. 그 조각난 인삼을 깨끗하게 물기를 빼고, 꿀에 쟁여 놓은 뒤, 하루에 한 숟가락씩 떠 먹여주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손길이 우리 형제를 건강하게 키워낸 토양이었다. <중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