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3번 출구 계단을 말없이 웃으며 익숙한 듯 

혜화역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너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설레는 마음보다 뭔지 모를 울컥함으로 멍하니 서 있다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그리움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해서

40년이라는 세월에 하얀 서리 나이테는 왜 그리도 많이 

너의 검은 머리 주인집에 월세도 아닌 전세로 거들먹거리며

가득 채운 갈색 머리 염색약을 야금야금 지워가며 하루하루 

배를 불리니, 안타까움은 미안함이 되어 작은 강으로 흘러가고

어색한 듯, 쑥스러운 듯, 미적미적 죄 없는 허공만 바라보다가 

까만 밤의 연속극처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지나온 세월은 

어릴 적 친구 이야기, 동네 어르신 이야기, 처녀 귀신 이야기까지

카페를 수놓는 대화 속 향기가 진한 우정이 뜨거운 태양같이 솟아오르고

아쉬움에 옛 생각에 젖을 무렵, 브런치 타임이 시작되고 

서울 중산층 보통 아줌마들의 합창 대화에 형체를 알 수 없이

너와 나는 허공에 떠다니고, 바닥에는 애꿎은 지렁이가 고개를 끄덕이니

테이블 너머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넘쳐나는 데시벨에 귀를 쫑긋 세우면 

창문 너머 대학로 은행나무는 여전히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알 수 없는 입 모양으로 중얼거리며 방긋방긋 웃고 있다

                  박여범-「처음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전문

배가 고팠다. 세월은 우리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터덜터덜 대학로를 거닐어 해장국밥 식당으로 들어섰다. 12시 전후, 식당은 이미 많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선짓국밥 한 그릇에 속을 풀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청춘의 모습도 보였다. 젊은 애주가 그룹을 지나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화두였다. 그중 사망한 친구들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사고와 병으로 생을 마감한 친구들 이야기부터 자녀 이야기, 고향 이야기, 학창시절 이야기, 직장 이야기, 골프 이야기, 건강 이야기를 나누며 세월을 보상받고자 했다. 가까운 대치동에서 은행 부지점장을 하는 친구와 통화도 연결해주고, 캐러멜 마키아토를 한잔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도 나누었다 

대학로의 한 카페, 브런치를 즐기는 서울 중산층 아줌마 부대가 시끄러웠다. 덕분에 경쟁하듯 우리의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높아만 갔다, 한번 이혼하고 다시 초, 중, 고 동창을 만나 잘 산다는 이야기부터, 아직도 총각인 친구 이야기, 돈을 많이 벌었지만, 자식이 없어 고민한다는 친구 등, 그 짧은 시간에 40년 이별을 지워 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었다. <하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