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

넓고 넓은 마당이라 하여 붙여진 

동네 이름

판수리, 그 판수리에는 여섯 개 반

이 있고 

양지말 음지말 부르실이 있어 

색깔을 달리하는 곳

삼반 사는 고동수는 다리 건너 

육반 여범이네 집에 오고

최시현 오빠 만나러 육반 사는 

경희가 콧노래 흥얼거린다

옥천군 청산면 판수리 이구오 번지 

육 반은 충청북도행 

완행버스에 당근, 방울토마토, 고구

마, 들깨, 참께, 쪽파, 양파에다가

덤으로 익숙한 느리디느린 충청도 

사투리 가득 실어 뿌뿌뿌 출발하면

여덟 살 초등학교 입학식이 시작되

는 운동장엔 경운기 대열 합류하고

포크레인 기사 영호가 부르릉 붕우

웅 굉음을 울린다

 

붉게 물든 판수리 이구오 번지 

육 반 슈퍼에는 주인 모를

커다란 솥뚜껑에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어가고 

누군가 어깨를 툭 치길래 돌아보니, 

환갑을 바라보는 아들 

희망의 끈을 찾은 그곳엔, 두 팔 

벌려 다가오라 손짓하며

관객 없이 돌아가는 빛바랜 

영사기 소리만 요란하다 

                              -박여범

청산면 판수리 이구오 번지 육 반-

금강을 휘감고 도는 옥천의 기름진 산하에는 자라난 당근, 방울토마토, 고구마, 들께, 참께, 쪽파 양파를 키워내는 보청천이 흐른다. 보은과 청산을 이어주는 보청천을 끼고 자리 잡은 마을이 나의 고향 청산면 판수리 295번지 6반이다. 청산에서 가까운 지역으로는 옥천, 영동, 보은, 무주 등 낯설지 않은 지역으로 친환경의 대표적인 곳이다.

그러다 보니, 청산장은 이곳저곳에서 모인 사람들로 5일에 한 번 열린다. 장이 열리면 사람과 사람의 문화적 교류도 활성화한다. 마을, 마을 어디에나 실개천이 흐르고 굽이굽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정겨운 우리네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청산이고, 판수리다. 또, 그 판수리 295번지 6반은 나를 성장시키고 꿈을 키우며, 지금의 멋진 모습으로 굳게 서게 한 토양이다. 

얼마 전, 막바지에 옥천군 청산면 판수리 295번지를 찾았다. 2년여 만에 찾은 고향마을은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커다란 창고가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어릴 적 추억의 장소는 모두 파헤쳐지거나 낯선 건물이 들어서 있다. 친구 영진이네도, 개똥이로 불리던 봉길이 후배네도, 약삭빠른 선생님 아들 동원이네도,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덩그러니 추억의 영화처럼 생생한 호흡이 멈출 줄 모른다.

“혹시 퇴직하고 고향 판수리로 돌아가

 서 전원주택 짓고 살고 싶지는 않아?“

“글쎄, ‘예’도 아니고, ‘아니요’도 

 아니고......”

“대부분 나이가 들면 고향을 그리워 

 한다는디?”

“내가 내 고향을 찾아가면 아내는 

 어쩌라고, 둘이 이혼하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그건 아닌 것 같다. 난 고향은 그리움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좋은 듯해?

“그렇지, 막상 가보면 또 그렇잖아, 

 기대만큼 실망도 크지?”

“그래,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고향이라  생각하고 사는 것이 가장 속 편한 거 아닌감?”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