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갈라진 바닥 위에 앙증맞게 핀 야생화 무리가 반겨 준다. 며칠 전만 해도 그냥 지나쳐가던 그 자리에 언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게 활짝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한적한 길이어서 그 누구도 꽃을 보아주는 이가 없다. 사실이다. 누구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길은 외로움마저 다가온다. 아마도 꽃이 너무 작아서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많으면서도 많지 않은 아이러니한 시간이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만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 시간도 시간이지만 관심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거리에서 외로움으로 작아지는 ‘너’와 ‘나’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왜 시간이 없는 것일까?’, ‘왜 우리는 조급하기만 하나?’, ‘너무나 많은 걱정의 시간으로 세월을 저축하나?’ 등 ‘시간의 필요성’, ‘기다림의 미학’은 ‘아하 이런 것이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문학 장르 중 하나가 바로 ‘시’다. 

창비교육, 2018에 발행된 박찬세의 시집 <눈만 봐도 다 알아>의 시작은 닫힌 공간 교실이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이미 숨구멍을 찾고 있다. 답답하지만, 그 공간에 순응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1교시 시작부터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죽이는 일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닫힌 공간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 ‘제자리 걸음’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자고 있는데 근영이가 물을 뿌렸다

밥 먹으러 가자고 물을 뿌리며 깨웠다

밥 안 먹는다고 하지 말라는 데도 뿌렸다

안 꺼져! 소리쳤더니

뭐 인마! 같이 소리치길래

근영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상옥이가 달려와서 말렸는데

말리는 상옥이한테도 꺼지라고 소리쳤다

그러기 싫었는데

나는 정말 그러기 싫었는데

애들이 보고 있었다                -박찬세, ‘눈만 봐도 다 알아’ 전문-

<하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 교감·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