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이코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작가이다. 동서고금의 문학역사를 통틀어서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있는 거장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도스토예프스키다. 세계의 시성 두 사람을 꼽으라면 토마스 스턴 엘리어트가 그랬던 것처럼 단테와 셰익스피어를 언급하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문학이 시에 국한하는 게 아니고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거라면 나는 20세기의 대시인과 견해를 달리한다.
오늘날에는 소설이 문학 세계의 제왕 노릇을 하고 있다. 소설은 그만큼 다른 장르의 문학보다도 인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다루고 있다. 소설이 인간에 관하여 못 다룰 비밀은 없다. 소설의 영역은 우주만큼이나 무한대이다. 인간을 소설적 관점에서 보면 시극적 관점과는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이해한 면에서 셰익스피어보다도 더 위대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는데 그것은 평론 역사의 차이에서도 연유한다. 두 작가의 작품을 거대한 지하자원이라고 비유할 때,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그의 사후 채굴된 역사가 4백 년에 가깝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는 채굴 역사가 이제 겨우 130년에 이르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위대한 작가임에도 작품 속에 산출한 자녀는 그리 많지가 않다. 아들도 몇 명 안 되지만 딸은 더 적다. 그나마 그 아들들은 후속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얼굴을 약간 달리한 채로 성격이 강화되어 나타날 뿐이다.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들은 소설의 배경에 따라서 변주된 성격을 가진 채로 태어나 변주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그 인물들이 사랑스럽거나 존경스러운 것은 아니다.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캐릭터가 없는 게 아니지만 그들은 극소수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캐릭터들은 주연 배우가 되지 못하고 조연 배우도 되지 못하고 엑스트라 수준의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한 아들들은 대부분 사이코이다. 그 맡고 있는 역할이 크면 클수록, 그 토로하는 사상이 낯설면 낯설수록, 사이코적인 성격은 강렬하다. 그러니까 그들의 사고방식이며 행동방식은 건전한 독자의 관점에서 보면 언어도단이다. 그 어둡고 침울하고 불쾌하며 병적인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전개하는 생존 방식이 전율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라스콜리니코프보다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더 그렇고 스비드리가일로프보다는 이반이 더욱 그렇다. 그들은 회색의 암흑지대에서 검은색의 흑암지대로 자신의 운명을 운반해가는 어둠의 자식들이다.
작품 속의 사이코들이 실제의 보통 사람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면서도 파라독스이다. 그러나 곰곰이 궁구해보면 그것은 아이러니와 파라독스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하늘에서 영적인 존재가 인간 세상을 조감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런 추리가 가능하다. 인류는 정말이지 불행하다. 이 어둡고 침울하고 불쾌하며 병적인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지상에서 다른 사람을 더 좋은 길로 이끌어 갈 지혜가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예레미야가 일찍이 고백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길을 올바로 인도할 수가 없는 법이다.
며칠 전에 별 해괴한 사건이 우리 고장 군산에서 있었다. 아흔한 살 여신도의 발바닥을 예순세 살의 목사가 스무 대 넘게 매로 때리고 손으로도 얼굴을 가격한 사건이 그것이다. 새벽 예배에 빠져서 그랬다는데 너무 어이가 없다. 신도의 기강을 바로 잡는 방식치고는 패륜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막 돼먹은 인간이라도 어머니 같은 사람에게 그 같은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믿음과 사랑에서 본이 돼 마땅한 위치에 있는 목사가 그랬다니 세상에 사이코라도 보통 사이코가 아니다.

이희찬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