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모둠별 토론이나 활동을 진행하다가 교실을 한 바퀴 돌아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지저분한 달력과 마주치곤 한다. 거의 모든 학급이 비슷하다. 달력에는 자신의 생일을 유난히도 크게 ‘동그라미’를 그어놓는다. 그래야 자신의 새 일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달력의 새하얀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낙서의 전시장이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달력이 아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달력의 쓰임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 달력은 한 장이라도 그냥 버리는 경우가 없었다. 단 한 장의 달력은 벽지로 사용되거나 명절이면 부침개를 보관해주는 선반의 받침대가 되어 주었다. 심지어, 아이들 놀이 중요한 딱지나 비행기를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하였다. 너무 헤어져 아무 용도로도 쓰일 수 없는 경우에라도 불쏘시개로 사용되었다.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이로움으로 남은 종이, 그 한 장, 한 장이 소중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디지털 시대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능이 뛰어나고 산뜻한 달력이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근무하는 교무실 중앙 벽에는 커다란 지역농협 달력이 턱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편리하고 예쁜 많은 달력이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편리성’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줄 ‘지역농협’ 달력이 오래오래 함께해주길 기대하면 무리일까?

박여범 / 용북중학교 교사·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