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주문 제작했다. 다가올 어머님의 ‘칠십팔 회 생신 잔치’를 위해서다. 연세가 있으시고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머님. 걱정하는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집에서 직접 해 드시려고 한다. 자녀들을 위해 본인의 생일임에도 며칠 전부터 밑반찬부터 바지런히 움직이신다. 매년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외식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다행하게도 ‘고기’를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자식들 부담 주시지 않으려고 불고기·낙지를 예약하셨다. ‘고기’도 종류가 많은데 본인이 드시고 싶은 저렴한 음식을 선택하셨다.

아침에는 찬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전날 내려온 처제, 천안에서 달려온 처남, 그리고 전주의 우리부부, 손자들과 함께한 ‘불고기·낙지’ 식사는 맛은 있었지만, 부족한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식사 장소에서 한동안 뵙지 못했던 처의 이모와 이모부를 만나 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병원 진료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건강하심에 감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주문 제작한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다. 그리고 손뼉을 치며 한마음으로 생신 축하노래로 함께 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며 농담 삼아 말씀하신 아버님의 축가가 분위기를 올려 주었다. 첫인상이 코스모스를 닮은 어머님을 기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불러주신 노래는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익숙한 가사였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노래 김상희, 작사 하중희, 작곡 김강섭.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중략)-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이라는 노래를 부르시며, 흥에 겨워 춤까지 보여주시는 아버님을 바라보며, 소녀처럼 웃으시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부끄러운 소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님의 축하곡에 이어 어머님의 ‘꼬부라진 할미꽃~’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에 얼마 전부터 교회에서 성악을 개인지도 받는 처남이 ‘눈’이라는 멋진 노래를 아파트가 떠나가라 불러주었다. 앙코르에 박수가 범람하는 현장은 아쉬움으로 멋지게 마무리되었다. 이처럼, 기억에 남을 생신 잔치를 마무리하고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생일 풍경이길 희망한다.

2002년 서울 월드컵이 열리기 몇 개월 전,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소천하셨다. 추억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몇 장 남지 않는 사진이 전부다. 머리에 남아 있는 아버지가 낯선 시간이 종종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 ‘죄송스러움과 미안함’이 먼저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족의 생전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난 추석에는 까마득한 세월을 걷어내고 가족사진을 찍는 대형사고가 있었다. 흰색 옷으로 통일하고 전 가족이 모여 사진 촬영을 하던 날,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요양원 생활로 많은 시간을 보내시는 어머니가 아픈 손가락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건강하신 아버님 어머님의 생신 잔치와 가족사진 촬영을 통해 다가올 우리 부부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하편에 계속>

박여범 <용북중학교 교사·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