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봉] 순교자

최종등록 11-05-04 20:58 최종수정 11-05-04 20:58

온라인이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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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한 폐채석장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거기에서  한 남성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 못 박혀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숨진 사람은 올해 쉰여덟 살로 최근까지 양봉을 했는데 전직이 목사였다고 한다.
전직이 목사라니까 가시관을 쓰고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게 그럴 법하다고 보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 죽음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소중한 인명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라지는 것은 끔찍하다. 경찰이 여러 각도로 수사를 하고 있다니 조만간 발표를 통해 전모가 밝혀지겠지만 정황상 자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지금이다. 아무튼 그의 죽음은 충격적인데 해프닝으로 여길 일이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죽은 그 김 모 씨는 자신의 죽음을 순교의 한 표현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했던 것 같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다 감행했으니 말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 전문가의 감식 결과 옆구리의 상처는 각도와 방향 상 스스로 흉기를 이용해 찌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경찰은 내놓고 있는 것이다.
종교인 중에는 그 정신 상태가 보통 사람하고 다른 부류가 더러 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려는 부류가 그들이다. 죄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재현한다고 해서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아니련만 광신적인 이들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떤 종교인들은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하느님께 가깝게 나아가는 행위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성서는 분명히 지적하고 있거니와 그것은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를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이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의를 강조하는 방편치고는 하수에 지나지 않는다.
순교자는 정신이 명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취해 있는 자는 결코 순교자가 될 수 없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이루었다’는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몸으로 알아야 한다. 그런 자라야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부탁할 수 있을 것인데 참으로 보통사람들에겐 지난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이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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