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속성 중에는 불가사의한 것이 많다. 평화에 대한 반응도 그 불가사의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평상시에는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표변해버린다. 인류사의 숱한 장면에서 그것을 거듭 거듭 확인할 수가 있다. 그 뼈아픈 어리석음의 반복이 문학작품으로 예술작품으로 형상화 돼서 인간의 영혼을 깨우치고 있음은 두루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럴까. 평화를 알기 위해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책을 펼쳐보지만 어른들은 별다른 방법을 찾는다. 어른들 중에서도 나라를 경영하는 가부장적인 노인세대는 더 특별한 방법을 찾는다. 그런데 그 방법 찾기가 너무 지난하고 때로는 치졸할 만큼 엉뚱할 때가 있다.
평화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는 세대는 그것을 겪었던 세대보다 행복하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는 세대는 그것을 직접 체험한 세대보다 행복하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는 세대는 그 역사를 직접 관통한 세대보다 행복하다. 그러나 손자들과 아들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앞에서 그 행복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평화는 겉으로 웃는 낯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는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지난 10일 시상식에는 수상자도 없고 수상자를 대신한 사람도 없이 빈 의자가 상패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중국 정부와 노르웨이 정부는 지금 팽팽한 긴장관계에 있다. 중국 정부가 복수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중국이 자국에 대량으로 수출되고 있는 연어에 대해서 특별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노르웨이 당국에 통보한 것이 1차 타깃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평화가 우습다. 평화를 선양하는 자리마다 썰렁하기 때문이다. 유럽 최고의 인권상으로 평가받는 사하로프 상의 자리에도 수상자가 참석하지 못해 빈 의자가 대신 상을 받았다. 쿠바 정부가 수상자인 파리나스의 출국을 허가하지 않은 것이다. 국제연합의 한 쪽 광장에는 이사야 2장 4절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는데 나는 그게 또 우습다. 국제연합은 창립된 이래 평화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인류의 거의 대다수는 인간의 평화 노력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논설위원 이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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