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안다. 어휘가 풍부할 수록 표현이 풍부해진다는 것을. 그런데 단순히 가지고 있는 낱말의 수가 많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아는 낱말이 많다는 건 생각과 감정을 더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가장 알맞은 낱말을 고르는 게 수월하다는 뜻이다. 이 수월성은 노력의 대가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세분화 하고 들여다 볼 수록 그 각각의 결마다 최적의 낱말이 필요해진다. 그런 욕구가 늘어날 수록 일상에서 오가는 낱말들의 수집은 물론, 다른 자리에 있던 낱말들까지 당겨가며 의미의 쓰임을 늘려서 결국 어휘가 풍부해진다. 

어휘가 풍부하다는 건 생각과 감정의 광활한 분화를 계속 추적하여 표현의 영토를 넓힌 노력의 결과다. 대화 중에 '아 이 말이 딱 맞는 느낌이 아닌데...' 하며 더 나은 표현을 찾는 게 별 것 아닌 거 같아도 생각보다 힘이 드는 일이다.

알맞은 낱말을 찾는다는 건 자신이 뾰족하게 느낀 개념과 주제, 상황과 맥락, 자신의 위치와 듣는 이와의 관계 등 수 많은 것들을 따지는 일이다. 그런 반복을 통해서 엇비슷한 의미를 가진 낱말들 중에 좀 더 명확한 낱자를 콕 집을 수 있고, 같은 낱말이라도 느낌을 달리 해 다양한 의미를 전할 수도 있다. 

표현이 '진부하다'는 건 평소 이 노력을 덜 해서 밑천이 적다는 뜻이다. 표현이 '정확치 않다'는 건 생각을 세분화 하지 않아서 비슷한 낱말들 사이의 차이를 모른다는 뜻이다. 표현이 '적합치 않다'는 건 생각이 깊지 않아서 개념의 구분이 안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기도 뜻을 모르는 낱말을 쓰는 것'은, 말의 내용에 담긴 목적과 본인이 추구하는 목적이 다를 때 일어난다. 말을 단순한 도구로 쓰는 경우다. 한낱 도구이니 낱말의 세세한 부분들에 이어진 사고까지는 뜻을 몰라도 되는 것이다. 말은 말 대로 가고 자신의 생각은 생각 대로 따로 가면, 자신이 미처 생각해 보지 않은 개념들에 어울리지 않는 아무 낱말이나 마구잡이로 가져다 쓴다. 한마디로 말의 내용에 관심이 없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에서나 쓰던 '달창'이라는 말을 써서 논란이다. 달빛 창녀단이라는 뜻이란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특정 지지 집단을 성적으로 비하하고 모욕하려 쓰는 낱말을, 제1야당의 원내 대표가 공공장소에서 대중을 상대로 쓰고서는 나중에야 뜻을 미처 몰랐다고 해명했다.

정확한 표현을 위해 사고의 광활한 여행을 떠나본 사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목적에 맞지 않는 낱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현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천명하겠다고 발언하면서, 독재와 민주주의의 차이가 무엇인지, 민주주의에서 인권의 가치가 무엇인지, 인권을 위해선 왜 차별과 혐오를 하면 안되는지, 차별과 혐오의 표현에 무엇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평소 꾸준히 고민해 왔다면 그 정반대에 있는 낱말을 쓸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감각하게 그냥 썼다. 민주주의와 반독재에 관해 말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하는 말의 내용과 목적에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건, 자신이 목적하는 바가 자신이 하는 정의로운 발언과는 다른 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뜻을 모르고 썼다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해명을 믿는다.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의 내용과 목적에 관심이 없었다고 규정하면 앞뒤가 맞기 때문이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알겠다.

곽보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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