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슈바이처는 한 때 정체성을 고민했다. 자신이 프랑스 사람인지 독일 사람인지 헷갈렸던 것이다. 국적은 프랑스인데 이름은 독일 쪽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지 슈바이처의 고향인 알자스는 역사적으로 그 운명이 기구했다. 국력과 외교의 향배에 따라 독일 쪽에 속했다가 프랑스 쪽에 속했다가 했던 것이다. 그러니 명민한 슈바이처도 역사의 중력에 힘겨워해야만 했다.
그런데 슈바이처는 자신이 어느 쪽 사람인지를 나중에 알게 됐다. 잠들어 꿈을 꿀 때 그 내용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는 평상시에 프랑스어도 구사했고 독일어도 구사했지만 영혼의 골수는 분명했다. 그는 꿈속에서 자국어인 프랑스어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독일어로 사고하는 걸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쪽에다 정립했을 것인지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가 별로 없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공기를 호흡하며 자랐다면 몰라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공기를 호흡하며 자랐다면 전부 다 한국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괴롭히는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혼 개조에 발 벗고 나선 이들 때문이다. 그들은 높은 자리에서 완력을 휘두르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이들이 교육계에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요즘 구설수에 오른 카이스트의 서남표 총장이다.
카이스트에서 학생의 자살이 속출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네 명이나 된다. 청운의 꿈을 품고서 카이스트에 입학했을 학생들이 카이스트의 잘못된 제도를 견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적에 따라 차등을 두는 제도도 문제지만 무조건 100% 영어 강의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못 따라가는 학생들이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중요한 것은 수학적 사고방식이다. 과학을 배우는 학생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논리이다. 그렇다면 그 가르치는 방법이나 수단이 꼭 영어여야 할 이유는 없다. 국어라야 통할 수 있다면 국어가 허용돼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의 장본인인 서남표 총장은 학생에게도 교수에게도 너그럽지가 못했다. 수많은 건의를 끝끝내 묵살하면서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보도된 대로 참담한 비극의 연속이다. 

/이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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