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꽃피는 광경을 보는 것은 행복이다. 그래도 그 행복이 분에 넘치면 안 된다. 감정의 과잉이 버릇인 사람에게는 그렇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인생을 욕심껏 누리보지 못한 나는 뒤돌아보는 것마다 후회투성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보면 가슴이 사무친다.     @눈앞의 대상이 풀포기의 꽃이든 꽃나무의 꽃이든 첫 순간은 행복이다. 맑고 투명한 기쁨이 가슴에서 샘솟는 것이다. 때로는 그 기쁨이 진한 꿀처럼 고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조심해야 한다. 방심하면 자신도 모르게  아래쪽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서러운 감정이 솟구쳐 오른다.
인생을 담담하고도 신사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감정의 파노라마를 모른다.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온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니다. 조지훈 시인의 ‘승무(僧舞)’를 읽다보면 ‘너무도 고와서 서러워라’는 구절이 있다. 고운 얼굴의 서러움을 아는 이들은 꽃이 어째서 서러운지를 안다. 그게 낙화가 아니고 만발한 순간의 꽃들이라고 해도 그렇다. 아마 그 정서는 중국의 한무제가 ‘추풍사(秋風辭)’에서 읊었던 환락극혜애정다(歡樂極兮哀情多)하고도 얼추 통할 것이다.
황동규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의 꽃잔치는 삼국사기의 본기(本紀)에나 오를 법한 쾌거이다. 매화꽃이며 산수유꽃이며 살구꽃이며 백목련꽃이며 개나리꽃들이 서로 자기를 먼저 보아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더하여 튤립이며 수선화며 히야신스며 아네모네며 앵초는 또 어떤가.
이때쯤이면 내가 감상하는 그림이 있다. 겸재 정선의 <심화춘감도>이다. 겸재가 진경산수의 시대를 열어서 조선 최고의 화성(畵聖)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이 그림은 그 격이 높지가 않다. 그래도 내가 이 그림을 즐겨 감상하는 이유가 있다. 그림 속의 사나이가 나하고 비슷한 정서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사나이는 술에 취한 채 꽃 앞에서 주저앉아 있다. 그래도 그림 속의 사나이는 정신을 아주 놓지는 않고 꽃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엎어진 술병과 작은 솥단지 옆에는 꺾어 놓은 꽃가지들도 있다.
창조주께서 사람을 이 땅에 내신 목적을 생각해 본다. 당신의 형상답게 살라고 해서 내신 것이지 봄에 꽃구경이나 하면서 살라고 내신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가끔 그것을 묵상하고 또 묵상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해답이 없다. 죄 많고 불완전한 영혼이라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까닭이다.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