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제 멋을 내고 있다. 지난 사나흘 간의 날씨는 참 고마웠다. 그래서 칭찬을 해주고 싶다. 포근했다는 표현보다는 따뜻했다고 해야 적절할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가 바로 이맘때이다. 나는 아무래도 사월 바보이다.
엊그제 전주시 효자동 외곽의 도로를 걸었다. 반가운 친구들이 눈에 보였다. 양지 뜸에서 자잘한 풀꽃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나에게는 모든 꽃들이 무조건 웃는 낯이라는 아집이 있다. 그 웃는 낯을 자세히 보려고 가깝게 다가갔다. 발치 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래도 만족이 안 돼서 그 앞에 무릎을 세우고 쭈그려 앉았다.
또 다시 바람이 불자 봄까치꽃들이 파란 눈을 생글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워낙 일찍 피는 녀석들이라 서식 밀도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겠다. 자세히 보니 며칠 전보다도 다들 싱싱하다. 기온이 점점 올라가니 풀꽃들도 컨디션이 좋은가 보다. 밭에서는 늙은 농부가 젊은 아들과 함께 쓰레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머리에 수건을 쓴 아낙이 조심스럽게 씨를 뿌리고 있다. 밭 갈고 씨 뿌리는 가족의 심성이 봄까치꽃처럼 소박하고 예쁠 거라고 나는 상상해본다. 
저만치 따로 작은 군락을 이룬 친구들 쪽으로 걸어간다. 분홍색 꽃초롱을 달고 있다. 그런데 속이 뜨끔하다. 광대나물은 늦게 피는 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옛날 십오 년 전 쯤, 나는 막내 누이와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섬진강 다목적댐으로 놀러간 적이 있다. 거기 비탈진 언덕에서 광대나물꽃들을 보았었다. 그 중의 마음에 드는 꽃 한 송이를 뜯어서 초등학교 5학년생인 질녀에게 주던 생각이 난다. 나는 그때 조금은 장난스런 기분이었던 같다. 로댕보다 훨씬 더 훌륭한 하나님의 조각 작품이라고 말해주자 질녀는 이게 무슨 조각이에요 하며 피식 웃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근심 짙은 누이의 옆얼굴을 훔쳐보다가 안 그런 척 멀리 산을 둘러보았다. 산에는 산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나는 그날 불행한 사람들에겐 꽃멀미라는 단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산에는 봄소식을 말해야 할 산벚나무들이 잠잠하다. 아직 사월 초순이라서 그럴 거다. 또 저만치 냉이꽃이며 민들레꽃들이 보인다. 소규모지만 역시나 군락이다. 나는 그 풀꽃들에게도 말 걸고 싶다. 풀꽃들은 영혼이 아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진실하기 때문이다. 풀꽃들은 환경이 맞기만 하면 때 이르게 섭리를 받들 수도 있음을 나는 지난 주말에 발견한 것이다.
 
/이 희 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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