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의 일이다. 한 친구의 호의로 다른 사람들의 일행에 끼어 관광버스를 타고 부안 격포로 놀러간 적이 있다. 요즘 그 때의 추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선명하다. 백목련이 소담스럽게 피기 시작하던 때였으니 꼭 이맘 때였다. 친구와 일행은 평소에도 잘 트고 지내던 사이였는지 첫 만남인 나에게도 부드럽고 싹싹하게 대했다.
미선나무라는 글제를 놓고서 십 년 전의 추억을 먼저 언급하는 까닭이 있다. 그날 생전 처음으로 미선나무를 보았기 때문이다. 일행은 격포에 가기 전에 부안댐을 돌아보기로 했던 모양이다. 공원의 정류장에 내려서 일행은 숲속의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랐는데 나는 그때 길 옆에 서있던 백목련의 순결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더 강렬한 인상이 나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미선나무가 준 인상이다.
부안 댐에 거의 다 올라가서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던 것 같다. 처음으로 오르는 장소였기에 그랬을 법도 하다. 그런데 홀연히 진귀한 자태의 꽃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꼭 개나리꽃인데 그게 흰꽃이었던 거다. 개나리꽃이라면 노란색이라야 정상인데 흰꽃이라니 돌연변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빠르게 스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일행에서 벗어나 흰개나리꽃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가슴이 설레는 걸 느꼈다. 개나리꽃에게서는 맡을 수 없었던 향기가 났던 것이다. 꽃송이를 코에 대보니 그윽한 향기에 정신이 아주 황홀했다. 그러면서 이 꽃이 개나리가 아니라 책을 통해서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그 미선나무의 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미선나무는 세계에서 1속 1종만 있는 한국 고유의 식물이다. 미선나무의 이름은 그 둥글게 생긴 시과(翅果)의 모양 때문에 붙여졌다. 시과의 모양이 꼭 옛날사람들이 부치던 부채 같아서 미선(尾扇)나무라고 한 것이다. 미선나무 자생지는 잘 알려진 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추점리의 자생지가 제220호이고 율지리의 자생지는 제221호이다. 그리고 영동군 매천리의 것은 제364호이다. 그런데 우리 고장에 있는 부안군의 미선나무에게는 아직 그런 지정이 없는 것 같다. 내가 과문한 탓일지는 몰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 봄에는 부안에 다녀올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부안 댐에 가보게 되면 그동안 미선나무가 잘 자라고 있었는지 확인해볼 생각이다. /이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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