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곡창지대와 수려한 산세, 그리고 드넓은 남서해안의 갯벌이 있는 전라도. 특히 전북은 섬진강·만경강 등 5대 강의 발원지로 여느 지역보다 풍부한 물길을 가졌다. 이러한 자연적 풍요로움으로 인해 전북은 예부터 맛과 멋·풍류가 넘쳤을 뿐더러 그에 따른 안목도 남달라 그 명맥을 수년 간 이어왔다.

전북도립미술관(관장 김은영)에서는 ‘천년, 흐르는 물’ 신년 기획전을 개최한다. 전라도 정명(定名) 천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는 미술관 소장품 중심으로 구성됐다. 자연주의적인 서정성을 담아낸 한국화, 서양화, 사진 등 26점을 선보인다.

이들 전시작 중 김범석(1964~) 작가의 ‘모악별곡’은 도립미술관 개관전 ‘엄뫼·모악’전의 출품작. 작품은 7m에 달하는 대작으로, 작가는 모악산의 큰 흐름을 파악하고자 직접 모악산 정상에 올라 유년시절을 보낸 김제 들녘의 풍광을 바라보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정주하(1958~) 작가는 성장과정에서 각별한 애정이 담긴 ‘서쪽바다’를 통해, 평화롭고 한없이 포용하는 자연과 인간적인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갯벌의 다양한 풍광을 담아낸 오무균(1951~) 작가의 ‘갯벌·휴’는 구체적 형태가 없는 이른바 ‘올 오버(all-over) 페인팅 형식’을 취한다. 전체가 있어도 그림이 되고 조각을 내도 갯벌의 형상이 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완성해낸 작품이다. 

박남재(1929~) 작가는 격포 바다의 파도치는 풍경을 대담한 화필과 과감한 생략을 통해 묘사한다. ‘격포의 파도’는 작가가 추구하는 자연의 궁극적인 정신성과 장엄성 및 불변성을 특유의 표현기법으로 조형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송수남(1938~2013) 작가의 ‘산수’는 수평구도를 바탕으로, 검은 선들과 하얀 여백이 어우러지는 간결하고 독창적인 산수의 형태를 표현했다. 형상에 의지하거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종이와 붓, 먹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원초적인 조형미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기홍(1959~) 작가의 ‘바람·대숲’은 200호가 넘는 캔버스에 대숲의 바람 이미지를 시원하게 담았다. 

지용출(1963~2010) 작가의 ‘갯벌’은 부안의 해안과 갯벌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은 비릿한 바다 냄새와 고된 어민들의 일상을 그려내며 시대에 반응하고자 했던 작가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김학수(1933~) 작가의 ‘줄포항구’는 고향의 옛 풍경이 점차적으로 사라져가기 시작한 1960~70년대 이후 농어촌의 평범한 일상을 흑백사진으로 담은 작품이다.

곽풍영(1967~) 작가의 ‘김제 만경강, 생명의 터전...’은 전라도 곳곳을 드론으로 촬영한 항공사진들. 작품에선 주변에 흔한 소재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색감들의 다양성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작가의 독특한 시각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 ‘천년, 흐르는 물’은 변화를 말한다”며 “여기에는 은근과 끈기로 완곡한 변화를 즐기는 전라인의 온화한 성품이 녹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라미술은 흐르는 물처럼 상생하는 변화의 힘이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3일부터 22일까지. /정해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