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가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온 지 이십여 년이 지났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사람들이 고로쇠를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니다. 고로쇠나무는 태곳적부터 이 나라 강토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해마다 정월이 지나면 이른 봄 이 맘 때까지 고로쇠나무는 산꾼들이 찾아 만나야 하는 존재였다. 고로쇠가 대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사람 몸에 좋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부터이다. 고로쇠가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온 지 이십여 년이 지났다고 한 것은 그래서이다.
고로쇠는 단풍나무 가문의 출신이다. 단풍나무과 나무들이 그렇듯이 그 수액은 달콤하다. 단풍나무보다는 격이 낮아 사돈네 팔촌 격 쯤 되는 플라타너스를 보아도 그걸 알 수 있다. 플라타너스의 몸통에 작은 생채기를 내어 혀끝을 대보면 달큰한 맛이 난다. 보통 단풍나무도 수액이 달콤하지만 그 수량이 적다. 수량이 많은데다 향내가 나는 고로쇠 수액은 마실 때의 목 넘김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보통이 아니다. 본래 이름이 뼈에 좋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였다는 걸 알고 있는 오늘날에는 그 인기가 더 현저해졌다.
그런데 고로쇠나무가 너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몸통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수액을 물통에 받아내는데 그게 좀 지나치다. 고로쇠나무의 건강은 전혀 생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니까 너도나도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고로쇠나무들이 견뎌내지 못 할 텐데 말이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에서 사는 평강공주>라는 시로 당선한 박라연 시인은 그 무렵 <지리산 고로쇠나무>도 함께 응모했었다. 고로쇠나무의 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오버랩 시킨 작품이다. 물관부 왼쪽과 오른 쪽에 꽂혀있는 호스들을 예수의 몸에 꽂힌 칼들로 본 것이다.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찌른 것은 로마 병사의 창이었지만, 박 시인이 고로쇠나무의 처참한 꼴을 보고 연민의 정을 느꼈음을 넉넉히 알 수가 있다.
내가 예전에 모 신문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 도내 모 자치단체장이 기자들을 위해서 고로쇠 물을 두 통인가 선물했던 적이 있다. 지금이야 법의 잣대가 엄격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인정의 한 표현이었다. 나는 그때 고로쇠 물을 한 그릇 마시고나서 또 한 그릇을 더 요구해서 마셨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는 두 그릇을 마신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고로쇠나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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