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자판기의 모음과 자음을 물끄러미 굽어보다가 자판을 두드린다. 독수리 타법이다.  ‘안전’이라는 두 글자를 만들어 내고서는 멍청해진다. 모니터를 바라본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웃고 있다. 비웃음 같다. 글을 전개해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안전에 대해서 생각을 전개해야 할 의무가 나에게는 있다. 슬픔에 젖은 정서가 다급하게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발 중동에서의 교통사고 소식이 끔찍하다.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채운 불의 긴 혓바닥들이 글자 그대로 대재앙이다. 불타고 남은 차체들의 뼈대가 앙상하다. 기름 탱크가 터져 흔적이 없는데다 고가도로의 상판에 심각한 균열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당시 화마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교통 통제로 멈춰서버린 자동차들의 긴 행렬이 끝이 없다. 어쩌다 저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일까. 단순히 추돌사고 때문일까. 아니면 바지에 불이 붙은 채로 달아난 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혹시 그자가 저지른 방화 때문일까.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원인이 곧 밝혀지게 될 것이다. 
@남극해 발 원양어선의 소식이 끔찍하다. 인성호가 침몰 돼 한국인 7명을 포함해 2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뉴질랜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해역에 ×표시가 돼 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화면에는 사고 해역에서 사망자와 실종자를 찾는 다른 배의 모습만 나온다. 그러면서 사망자와 실종자의 명단이 사라질 줄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후속 뉴스가 나온다. 남극해의 수온이 최고 섭씨 2도밖에 안 돼 실종자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물속에서는 사람이 10분을 배겨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서울 중동 나들목의 화재사고도 부산 선적 메로 잡이 배의 침몰사고도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트라우마는 악몽 속에서도 교훈을 속삭인다. 안전이 곧 지혜이고 안전이 곧 생명이라고. 참으로 잔인한 속삭임이다. 사람이 어리석어서 고난이 많았던 나는 ‘안전’이라는 두 글자를 그래서 원수처럼 노려본다. / 논설위원 이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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