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성경 야고보서 4장 14절의 개역한글판 표현이다. 다른 번역판들의 정중하고 겸손한 표현도 좋지만 나는 개역 한글판의 이 표현을 더 좋아한다. 어려서 읽은 개역 한글판이 나이가 들어서 읽은 다른 번역판보다 익숙한 까닭이다. 나는 이 성구를 묵상하면서 전율할 때가 있다. 어느 때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토하기도 한다. 가슴이 사무칠 때는 옆에 사람이 있어도 그걸 깜빡 잊고서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어리석음이 많았다는 토로이다. 그만큼 회한이 산처럼 쌓였다는 고백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초로(草露) 인생이다. 그런데 자신과 관련해서는 이 사실을 완강히 거부한다. 그리고 부러 잊어버린다. 인생을 말하기에는 아직 나이가 적은 젊은이들에게 그런 경향이 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세월의 흐름에 민감해진다. 육신은 늙어 가는데 해놓은 일이 별로 없음을 깨달을 때 문득 가슴이 에이는 것이다. 아아, 젊은 날의 바보 같음이여. 내일 일을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많은 계획으로 얼마나 많은 밤을 하얗게 밝혔던 것인가.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내면의 영혼은 또 얼마나 아프게 뜯겨나갔던 것인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의지보다도 시기와 우연이 운명에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시기와 우연이 밝음의 힘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어둠의 힘으로 더 강하 게 작용한다. 세상에는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겸허를 말하고 싶다. 욕망에 절제를 가하는 미덕이 있었더라면 오늘날의 내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세상에는 더어버빌 가의 테스처럼 불가항력적인 삶을 살아내는 수밖에 없는 이도 있음을 그때 인정했더라면 야고보서 4장 14절이 기가 막히는 비탄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토를 강타한 대지진 앞에서 일본인들은 그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죽는지도 모르게 죽어간 이들은 또 단말마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한계가 있는 존재인 것을 어쩌자고 그걸 망각하는 것일까. 백 년도 못 사는 목숨이면서 어쩌자고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릴까. 하늘의 별처럼 많은 내일 일은 오직 한 분만의 고유한 주권인 것을.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