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헌 종이라도 허투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번 사용한 종이를 뒷면까지 활용했으면 함부로 버려도 괜찮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최고의 발명품이 종이라고 인식해서가 아니다. 학교의 학생들이야 교과서와 참고서를 옆구리에 끼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 생각에 길들여졌을 수도 있겠으나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나는 학생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회인이다. 그러니 누가 나더러 인류의 3대 발명품이 뭐냐고 물어볼 일도 없을 것이고 종이의 역사에 대해 장문의 글을 써보라고 강요할 리도 없다. 채륜(蔡倫)이 고마운 게 사실이지만 그에 대해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이유이다.
내가 헌 종이라도 허투로 볼 수 없는 것은 신문에 난 짤막한 기사 때문이다. 그 기사가 내 눈을 찔렀다. 서울시 화곡동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폐지 때문에 할머니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공교롭게도 지나치던 트럭에 한 할머니가 머리를 치어 중상을 당했다. 그리고 그 비극은 단번에 나를 가난하고 애틋한 옛 추억으로 싣고 가 버렸다.
국민학교 3학년 때니 거의 오십 년 전의 일이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어머니 나이 쯤 되는 분이었다. 그런데 성품이 좀 독특했던 것 같다. 다른 반 선생님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일을 자청했는데 그것은 휴지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돈벌이도 되고 청소도 되니까 학생들에게 일석이조의 교육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휴지라는 게 처음에 한두 번뿐이지 매우 귀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운동장의 한쪽 구석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을 뒤지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서너 부대에 폐지가 가득히 차면 부근에 있던 제지공장으로 가져가서 돈으로 바꾸어오곤 했었다. 돈이라야 그 때 돈으로 십 원 남짓이었지만 그걸로 학급에 필요한 물품을 샀던 생각이 난다.
최영 장군은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유훈은 아무나 새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몸은 늙어 가는데 부양해줄 자식이 옆에 없는 이들은 더욱 그렇다. 요즘 전문수집상이 폐지 1kg 당 매기는 값은 150원이다. 그래도 독거노인들은 폐지 수집에 몸을 던지고 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이 하루에 2만 원이 채 안 된다. 이래도 한국이 잘 나가는 선진국일까. 정치가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쓴 웃음이 나온다.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