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방삭 얘기를 했지만, 오늘 그와 관련된 얘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옛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천하의 기재(奇才) 동방삭의 아내가 된 염노교란 여인이 있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녀 노릇까지한 절세가인이었다. 그녀는 무명의 한낱 서생에 불과했던 동방삭을 사모한다.
한무제가 등극하기 전인 태자시절, 황제 자리를 놓고 치열한 암투가 진행되던 때, 대의를 꿈꾸는 동방삭 역시 그녀를 흠모하지만 훗날을 기약할 수 없어 그녀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정국 속에서 줄을 잘못 섰다간 멸족지화를 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와 부부의 연이라도 맺게 되면 그녀에게 화가 닥칠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가 미모의 그녀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황실의 뜻에 따라 이미 정혼한 딴 여자가 있었지만, 염노교는 젊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태자가 이성으로 느낀 첫 여자가 됐다. 그러나 동방삭을 향한 그녀는 태자의 구애를 완곡하게 거절한다. 그녀는 태자의 책사인 동방삭을 향하고, 태자는 그녀를 목말라하면서 일종의 삼각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얼마 후, 태자는 동방삭 등 주위의 도움으로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들을 다 극복하고 황제에 오른다. 정혼했던 여자로 새 황후를 맞았지만 오랫동안 염노교를 잊지 못한다.
동방삭은 소임을 다했다고 여기고 일체의 부귀영화 공명을 마다하고 사랑하는 여인 염노교와 함께 전원으로 돌아간다.
셋 다 아름답고 당당하다. 한무제는 억지라도 그녀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냈기에, 염노교는 황비가 될 수 있었지만 사랑을 지켰기에, 동방삭 역시 천하를 거머줬지만 사랑을 택했기에 아름답고 당당하다는 얘기다.
쥐꼬리만한 권력 쥐었다고 직권남용하기 일쑤고, 사랑보다는 물질 보고 결혼하고, 사돈의 팔촌까지 들먹이며 권력 줄대기에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세 사람 모두 바보 같이 보일 지 몰라도 이들의 모습이 그야말로 삶의 전범(典範)이 아닐까싶다.  / 서재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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