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는 어떤 꽃일까. 백과사전을 보니 숲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라고 소개돼 있다. 그러나 그게 백 프로 맞는 설명일까. 자연은 사람의 책보다 크다. 모든 사람의 모든 관찰이 백과사전에 자세히 기록됐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복수초는 자유롭다. 생리가 숲속의 그늘이 맞다고 해도 항상 숲속의 그늘에서만 꽃피는 건 아니다. 복수초의 영토는 넓다. 살만한 자리면 어디서나 싹을 틔우고 자라나 줄기를 세우고 꽃을 피운다. 그런데 그 꽃은 단독무늬일 수도 있고, 정연한 이방연속무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조금은 흐트러진 사방연속무늬일 수도 있다.
복수초는 친근하다. 관심이 있다면 도시의 근교에서나 시골길에서 볼 수가 있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복수초는 한국과 일본과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그러니 복수초를 아끼는 것은 한국 사람의 특권이고 의무이다. 이른 봄, 복수초들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도 꽃피는 것은 아름답고 소중한 정서이다. 그래 이 자리를 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복수초가 주는 기쁨을 미국인이나 유럽 쪽 사람들이 말하게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백과사전의 설명을 좀 더 읽어보자. 복수초는 뿌리가 짧고 굵다. 검은 빛이 도는 갈색 잔뿌리가 많다. 복수초에 따라 원줄기는 10~30cm 정도로 매끈하다. 잎은 어긋나는데 잘게 갈라진 깃 모양이고 잎자루 밑에는 녹색 턱잎이 있다. 꽃은 원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한 송이씩 피어난다. 꽃잎은 20장에서 30장이다. 햇빛을 받으면 꽃이 수평으로 펴진다.
나는 수년전 이맘 때 한 친구와 함께 모악산에 올랐다가 내려온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승용차를 몰고 한참 내려오다가 갑자기 생각난듯 동적골 못미처에 있는 한 농장의 옆 도로에서 차를 멈추었다. 솔잎을 따기 위해서였다. 이따가 오리고기를 먹으려는데 솔잎을 넣고 찌면 향기도 좋고 맛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래 나도 그 친구 옆에서 솔잎을 한 웅큼 정도 땄는데 소나무들의 발치에 노란 꽃들이 피어 있었다. 민들레꽃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뜻밖에도 복수초였다.
백과사전을 계속 읽다보니 설명이 마뜩치 않다. 복수초가 4월에 피는 꽃이란다. 그것은 너무 때늦은 관찰이다. 눈 속에서 피는 꽃이라며 어떤 달력은 1월을 장식하기도 하는데 그도 너무 때이른 관찰이다. 지난 며칠 동안 한낮에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지금쯤 시골의 들판에는 노란 복수초들이 개화했을 것이다. 언제 햇빛이 환한 날 친구와 함께 구이 쪽으로 나가보려고 한다. 복수초꽃들은 자연이 무상으로 베푸는 선물이니 졸작이래도 시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