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근대사를 개괄하다 보면, 참 기막힌 두 대목을 만난다.
하나는 조선 말 고종 비인 민씨(명성황후)정권이 동학혁명의 농민군을 탄압하기 위해 청국의 원세개를 불러들인 것이고, 또하나는 청국이 말기에 태평천국의 난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들을 침탈했던 영국과 미국을 불러들인 것이 그것이다.
둘 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지탄만 받은 것은 아니다. 체제유지 혹은 당시의 상황논리를 적용시켜 어쩔 수 없었다는 측면이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외국 군대에 살인면허를 내줘 자국민들을 무참히 살육하도록 조처한 것에 다름아니다. 그 과정에서 외국 군대에 스러져간 개개인들의 원혼들은 아직도 구천을 맴돌 만큼 한이 서려있을 터다.
그 때까지만 해도 독자적 문명체계 속에서 스스로의 질서를 구축해왔던 동아시아는 19세기들어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으면서 근대화의 문을 열었다. 동아시아라고 해야 우리와 중국과 일본 뿐이지만, 일본은 이른 개화로 발빠르게 서구 제국주의화 하면서 조선을 삼켰고, 중국은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다. 말이 열강들의 각축이지, 실은 온갖 횡포와 협박과 공갈을 동원한 영락없는 조직폭력배 수법의 갈취전이었다.
당시 중국(청)과 조선의 집권자들은 농민 착취 등 부정-부패를 만연케한 것도 모자라 국가의 가장 기본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없을 만큼 국방을 소홀히 해 놓고도 농민봉기에 대해 석고대죄는 못할 망정, 자신들을 간단없이 괴롭혔던 외세의 힘을 불러들여 이들을 도륙하면서까지 정권유지에 급급했었다는 것은 역사의 단죄감이 분명할 터.
그러나 이를 교훈 삼기는 커녕 국내문제나 민족문제에 아무 거리낌없이, 결국은 자기들의 이익따라 움직이기 마련인 외세를 들먹이는 자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것 같아 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서재철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