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일이다. 자정 넘어 초등학교 때 무척 친했던 친구 배웅차 전주역 대합실에 간 적이 있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역 대합실은 새삼 인생여정을 생각게했다. 사실 그곳은 예전같진 않지만 그래도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또 배웅하거나 마중나온 사람들로 붐비다가 갑자기 한산해지는 그 흩어짐과 모임이 교차하면서 반가움, 헤어짐, 기대, 실망, 고독 등 삶의 편린들이 적잖이 묻어난다. 시골역일수록 더욱 그렇겠지만 발차시각이 많이 남아있던 그 날 한밤중의 전주역 대합실 분위기도 그랬다.
아무튼 넓게만 느껴지던 그 공간에 이십여 명 남짓이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우리는 대충 둘러본 뒤 비어있는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자연스럽게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걸인이었다. 쉰댓 쯤 됐을까. 그러나 범상치 않았다. 그 때 세상에 걸인행색이 의외였지만 그의 얼굴은 참 맑았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의 하얀 얼굴, 깨끗한 눈, 단아한 코, 단정한 입매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매우 인자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성자 같은 모습이었다. 걸인도 저런 모습을 가질 수 있구나싶어 친구 옆구리를 살짝 찔러 눈길로 신호를 보냈다.
우리들의 시선을 의식해선 지 그 걸인은 이내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데로 가버렸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비록 대충이지만 매일 대하는 거울 앞에서 그 날만큼은 자신의 얼굴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날카로운 눈매, 긴장된 얼굴, 무엇인가를 쫒고 있는 듯한 긴장감과 영악해야 하는 현실에서 오는 초조하고도 지친 모습이 거울 속에 있었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던 선인의 지적과 함께 먼 옛날 학창시절에 배웠던 ‘큰 바위 얼굴’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자신이 부끄러웠고 못마땅했다.
그 후 그 날 그 성인같던 걸인과 얘기 한 마디 못 나눴던 점이 줄곧 애석했고, 이따금씩 그의 심성이 어떨까 궁금해 하곤 했다. 자기의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함을 상기하면서.
그러다가 하도 오래돼 거의 잊었다. 그런데 최근 취업, 결혼 등을 위해 얼굴성형이 일반화됐고 모두가 ‘얼짱’을 위해 몸부림치는 세태가 됐다는 기사를 보면서 새삼 그 걸인이 생각났고, 진정으로 내면이 가꿔지지 않으면 그 같은 모습이 결코 나올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 그를 추억해 봤다. /서재철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