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만 5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 해 2006년 2월 내내 서머셋 몸의 <인간의 멍에>를 읽고 있었다. 요즘은 <인간의 멍에>라는 제목보다 <인간의 굴레>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바로 그 장편소설이다. 박진석 씨가 번역한 을유문화사 판으로 1965년도 초판이니 고색창연한 구닥다리 책을 나는 읽은 셈이다.

나는 그해 1월에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다. 열흘이 넘도록 비몽사몽의 고통에서 헤맸다가 한 달 쯤 지나서 몸을 가까스로 추슬렀는데 그 무렵 뽑아든 책이 모옴의 <인간의 멍에>라는 책이다. 그 무렵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현저하게 체력이 떨어져 있었기에 포크너나 카뮈나 유르스나르 같은 하이브로우 작품을 읽어내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좀 더 단계가 낮은 미드브로우 작품을 선택했는데, 읽고는 싶었으나 오래도록 읽기를 미루고 있던 작품들 중에서 속으로 짐이 되고 있던 것을 침대의 머리맡에 둔 것이다.

소설은 필립이 의사로 입신하고 마음을 안정을 찾아 결혼하게 되기까지의 젊은 날의 방황이 주된 내용이다. 그중에 짤막한 하나의 에피소드가 그제와 어제와 오늘 강렬하게 떠오른다. 필립하고는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무관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예술가를 지망한 한 처녀가 굶어 죽은 이야기가 작품 속에 있는 것이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다른 사람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그 처녀에 대해서 필립은 따뜻한 동정대신에 냉정한 동정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작품 속의 필립은 정말 온전한 정신태도를 나타냈던 것일까 하고. 그런데 느닷없이 그 난해한 질문이 또 다시 나를 괴롭히고 있다. 만 5년 전에 내가 나에게 물어본 그 질문이 또 나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있다. 실제로 한국 땅에서 예술가 지망의 한 젊은 여자가 굶어서 죽었다는 기막힌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비극의 주인공의 이름은 최고은. 1979 년생이니까 올해 나이 서른세 살, 만으로는 서른두 살이 안 됐을 수도 있겠다. 그녀가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음에 틀림이 없다. 그녀는 수재들이 다닌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다. 그녀는 그 학교의 영상원 영화과를 나왔다.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였고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2002년 단편영화 <연애의 기초>로 데뷔했다. 2006년 제4회 아시아나 국제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다. 그런 그녀가 세계가 남부러워 할 만큼 잘 산다는 나라인 한국 땅에서 굶어 죽었다니 도대체 믿겨지지 않는다.

배고픔은 인간의 멍에이고 굴레이다. 배가 너무 고프다보면 사람은 제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인류의 고전이고 인류의 생명수 책인 성서를 보아도 그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 <예레미야 애가>의 처참함을 상세히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배고픔에는 버텨낼 장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최고은 그녀는 남는 밥과 남는 김치를 이웃들에게 호소했을까. 그녀는 침상에 누운 채 몽롱해져 가는 의식의 끄트머리를 붙잡으려고 애쓰면서 감은 눈 속에 눈물을 그렁그렁 감추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유작으로 남긴 <격정 소나타>를 보아야겠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녀가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고 하는데 이미 2006년도의 작품이다. 아마 그녀는 그 후 오래도록 고독 속에서 지냈던 것 같다. 아아, 예술가의 길은 얼마나 혹독한 것일까. 그녀의 죽음 뒤에서 저만치 또 한 사람의 죽음이 오버랩되고 있다. <겨울나그네>를 감독했던 곽지균이다. 아아, 한국은 예술가들에게 참 냉정한 동정으로 가득찬 나라이지 싶다.            

/이희찬 논설위원

<Copyrightⓒ전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