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독일에서 발굴된 일제강점기 기록영상이 공개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일제강점기 기록영상 공개 언론시사회’를 열고 1920~30년대 생활상과 일제의 수탈정책을 확인할 수 있는 미공개 기록영상 7편을 공개했다. 고려대 송규진 교수, 한국영상자료원 류재림 원장, 장광헌 수집부장이 참석했다. 

러시아 소재 아카이브에서 수집한 기록영상물은 ‘북선의 양은 말한다’(1934)와 제목 미상인 ‘황해도 축산공진회’ 영상(1924) 등 2편이다. 

또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로 잘 알려진 독일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신부가 촬영한 기록영화는 독일 성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찾아냈다. 현재까지 전혀 공개되지 않은 단편 4편 ‘한국의 결혼식’(26분56초), ‘조상숭배’(20분38초), ‘한국의 아이들’(18분48초), ‘한국의 선교현장에서’(7분54초)와 약 4시간 분량에 달하는 촬영본까지 함께 발굴됐다.

‘북선의 양은 말한다’는 일본이 제작한 선전 기록영화로, 북한 지역으로 호주산 양을 운반·사육하는 과정 등 1930년대 일제의 남면북양(南棉(綿)北羊) 정책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자막 내레이션이 양의 시점으로 표현됐다. 북한이 양이 살기에 좋은 지역임을 강조하고, 일본에 충성하듯 해설을 써 어른 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까지 일제의 정책을 쉽게 선전할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송규진 교수는 “남면북양정책은 일제가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자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면과 모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남한에서 면화를 재배하고 북한에서 양을 사육한 정책”이라며 “이번 영상은 양 수송 과정을 순차적으로 상세히 촬영해 수송해로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남방지역과의 일반무역에서 어떤 경로가 활용됐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북한 지역에서 수입 양이 하역되는 곳은 청진, 나진과 함께 ‘북선 3항’이라 불리던 웅기(현 선봉)였다. 이곳에서 내린 양은 철도를 통해 최종적으로 경원의 동척 목장으로 수송돼 사육됐는데 영상은 이 과정을 담고 있다. 동척은 일제의 대표적인 수탈기구였다. 동척 산하에는 목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북양정책도 실행했다는 점에서 동척의 수탈정책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송 교수는 “그동안 학계에서 남면북양정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이처럼 양을 수입해 육성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보여진 영상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일제시기 연구를 위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며 “황해도 축산공진회 영상과 더불어 학계에 자극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황해도축산공진회 영상은 1924년 10월21일부터 황해도 사리원에서 개최된 공진회장 거리를 움직이는 자동차 위에서 생생하게 기록한 영상이다. 공진회는 일제강점기 각종 산물과 제품을 한 곳에 모아놓고 품평하는 대규모 상업 행사였다. 황해도축산공진회는 축산물만을 따로 취급한 것인데, 당시 일제의 산업 정책에서 축산이 상당히 중요했음을 시사한다. 비록 짧은 영상(7분21초)이지만 당시의 축산산업 행사장 모습을 상세히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독일에서 수집한 영상물은 1925년에 당시 성베네딕도회 독일 본부 수도원장인 베버 신부가 해외 선교 활동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다양한 한국 문화 및 풍습을 촬영해 제작한 기록영화다. 장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1927)와 ‘한국의 결혼식’ 등 단편 4편의 기록영상물이다. 

베버 신부가 두 번째 한국방문인 1925년, 5개월 간 서울, 원산, 금강산, 만주를 여행하면서 촬영, 제작한 기록 영상물들이다. 배오개 시장(현 동대문 시장), 원산 해성보통학교 운동회, 재현된 결혼식 및 장례식 등 다양한 한국 문화 및 풍경이 포함됐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국내 왜관수도원을 통해 1986년 비디오(VHS 90분)로, 2009년에는 설명내용(67분)이 추가된 비디오(DVD 185분)가 출시, 소개돼 일부 국내 방송을 통해서도 알려진 바 있다. 이번에는 질산염 원본 네거티브 필름 전량을 발굴해 원본에 준하는 디지털 결과물을 입수했다. 또 미공개 영상 약 60분을 포함한 영상 전편을 고화질로 복원, 감상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광헌 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장은 “일제강점기 우리의 사회, 문화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한국 학생들이 야외에서 교육을 받는 장면, 전통 춤을 추는 여자아이, 독일 신부들이 선교활동하는 장면, 그리고 본편에 등장하는 해성보통학교 운동회의 생략 부분 등이 있어 당시 한국문화 및 생활풍습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상자료원은 이번에 수집된 기록영상을 3.1절을 맞아 오는 3월1일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일반에 무료 공개 상영회를 개최한다. ‘북선의 양은 말한다’ 등 러시아 발굴 기록영상 2편 상영 후 송규진 교수의 강의가 이어지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등 독일 발굴 기록영상 상영 후에는 독일 현지조사원으로 근무하면서 해당 영상을 발굴한 영화연구자 최소원씨의 해설상영이 이어질 예정이다.

/정해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