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을 보는 것은 눈을 밝게 한다. 천연기념물은 귀하기 때문이다. 희소가치가 높지 않다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을 터이다. 그래서 나는 평화동 네거리 고개를 지나서 삼천동으로 가게 될 때면 일부러 곰솔나무에 눈을 준다. 어떤 때는 발걸음을 멈추고서 오래도록 바라보기도 한다. 봄비 내리는 날에나 함박눈이 내리는 밤에는 행선지도 잊고서 끝없는 상념을 펼치기도 했다.

전주가 고향인 나에게는 그 상념의 역사가 깊고 종류도 많다. 삼천동의 곰솔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훨씬 오래전부터였으니 지금의 내 고백은 부끄럽지가 않다. 철부지이던 네 살 때부터 시작된 상념이니까 반 백 년도 더 된다. 곰솔나무를 위했던 내 상념들이 시가 되어주거나 동화가 되어주거나 수필이 되어주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그러려면 나는 삼천동 곰솔나무와 더 친해져야 할 것이다. 사랑 또한 더 깊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백지 앞에서 연필을 자주 드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스무날 전 쯤 문화재 청은 천연기념물 5건을 새로 지정했다. 나는 이번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상들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싶다.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그러는 것처럼 새내기라고 신참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것이다. 경남 창녕군의 우포늪, 강원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의 무궁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의 무궁화, 충북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의 모과나무, 제주시 도련동의 귤나무들이 바로 그 친구들이다.

삼천동에 있는 곰솔나무는 전주시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에도 없는 해송(海松)이다. 그러나 삼천동 곰솔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에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 때는 죽을 고비도 겪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곰솔나무가 다시 살아나 천연기념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점이다. 지금의 곰솔나무는 한쪽이 토르소가 됐지만 다른 한쪽은 푸르르게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아들나무들도 옆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번에 신참 천연기념물이 된 그 친구들의 앞날을 생각해 본다.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아서 건강을 오래도록 누렸으면 좋겠다. 삼천동 곰솔나무가 겪었던 것과 같은 그런 우여곡절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논설위원 이 희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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