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된다. 누가 뭐래도 설은 우리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모두 부모, 형제, 친척, 친지를 만난다는 점에서 설레임을 안고 고향을 찾는다. 경제가 어려워 삶이 고달프고 귀성길이 교통혼잡과 체증으로 힘들고 짜증나도 이미 고향에 가 있는 마음으로 이를 참아낸다. 나름대로 준비한 선물꾸러미에는 정이 듬뿍 담겨있다. 부모를 기쁘게 하고, 할 수만 있다면 객지에서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고, 뭔가 이룩해낸 자신을 뽐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기다리는 사람대로 만남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있다. 그렇게 설 연휴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올 설은 구제역 파동으로 전 처럼 고향을 찾는 인파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럴 지라도 설은 설이기에 적잖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고, 이번 역시 설 연휴가 끝나고 모두 흩어지면 모처럼 정겨운 사람들로 북적이던 말 그대로 ‘사람 사는 것 같았던’고향은 또다시 뎅그런 빈 자리로 남아 긴 여운과 쓸쓸함만이 남을 것이다. 왔다가 떠난 사람들 역시 잠시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 생활에 그대로 함몰될 것이다. 설의 현상은 ‘집안끼리의 잠시 만남’일 뿐이다. 물론 조상께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가고 집안 어른을 찾아뵘으로써 가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느끼며, 자신에 대한 정체성도 희미하게나마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방 잊는다. 형식화된 상황에서 그저 하니까 하는 것이고 남들이 그러니까 따라하는 것이다. 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매번 그렇게 했고, 이번에도 별로 다르지 않을 터다.
정체성 없는 존재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세계화와 급변상황에 적응하느라 바쁨이 일상화된 현대인들은 자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자기가 누구이며, 또 조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정체성의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설연휴는 정체성 확립에 가장 좋은 기회다. 현지에서 조상의 족적을 살피면서 가문을 되돌아볼 수 있고 자식들에겐 자신의 뿌리를 실체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어서다. 또 사실 이 일만큼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도 없다. 모두가 정체성 찾는 설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