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천정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누워있는 나, 어마어마하게 밀려오는 두려움이 몸을 짓누른다. 집에는 갈 수 있을까? 이대로 영영 가지 못하면 어쩌지? 어떻게 블랙홀 같은 어둠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불행을 생각하며 몸부림쳐 본다. 그때,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어떤 음성이 가까이서 들려왔다.

“무서워 말거라, 나는 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 너도 그럴 거야.”

중국철학의 대가 펑유란의 음성이었다.

펑유란은 85세 때인 1980년부터「중국철학사신편(中國哲學史新編)」을 쓰기 시작한 분이다. 그때는 이미 병마에 시달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시력은 나빠질 대로 나빠져 눈앞에 있는 사람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고, 가끔 온 몸을 떨며 일어설 때는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지막 2년 동안엔 걷는 것은 물론 서지도 못해 누가 곁에서 도와주어야 했다. 음식도 세심하게 떠 먹여주어야 했으며, 식사 한 끼 하는 데 한두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심장병으로 병원에 실려 가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막내딸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얘야, 이번에 나를 꼭 살려다오. 아직 책을 마치지 못했어. 책이 완성되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 일을 아직 마치지 못했으니, 병을 꼭 고쳐다오. 그 대신 책을 다 쓰고 나면 병이 나도 치료하지 말거라.”

마침내 85세부터 95세까지 10년 동안 생명을 바쳐「중국철학사신편」일곱 권을 완성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중국의 철학은 반드시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마지막 숨을 거뒀다.

남들이 보기에는 언제 꺼질지 모를 촛불이었지만, 그는 모든 걸 불사르고 사그라질 때까지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수하기 위해 참으로 고달팠지만 찬란한 불꽃을 태운 것이다.

펑유란이 85세에 책을 쓰기 시작했다면 난 어려도 한참 어리다. 

그동안 몇 십년을 어둠을 뚫고 하루를 시작해 저녁이면 완전히 지쳐 나가 떨어졌어지는 생활을 했다.

 나 혼자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속도를 높이고 높이다 보니 몸이 탈진이 된 것이다.

바쁜 일상은 독감 바이러스가 되어 내 몸을 좀 먹고 있었다.

속도만 높인다고 더 멀리 나아간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쉬어 갈 때를 알려주러 내 몸을 찾은 병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으니 아픔을 감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늘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도 잠시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었고, 숨을 고르고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독촉당하지 않고 펑유란처럼 90 이 넘을 때까지 이 몸의 불꽃을 다 태우리라 다짐해 본다. 나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라고 아쉬워 하기 보다는 이제는 할 일 다 했으니 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

 

/김삼덕, 원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