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이 없다.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더 큰 광풍이 부는 듯하다. 그 바람에 두건 같은 얇은 천으로 만든 머리 끈을 날리면 잘 날아간다. 나중에 땅에 떨어져 밟히기도 하겠지만 다시 날아 오를 수도 있다. 날던 두건은 풀에 걸리지 않지만 나무에는 걸리기도 한다. 

이때 풀이라는 ‘망상’보다 더 단단한 나무라는 ‘집착’을 경계한 분이 부처님이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인 양변에 집착하지 않는 ‘중도’는 정말 대단한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부처님에게 의존할 것도 없다. 오직 부처님 말씀대로 부처님이 아닌 부처님의 가르침인 정법에 귀의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집착하면 안 된다. 그냥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듯이 진지하게 행동만 하면 되지 않을까?

불교의 정화를 원하고 개혁을 원하는 집단무의식은 계속해서 성숙해 간다. 이미 돌아갈 길도 없다. 그런 입장에서 조계종 개혁을 원하는 적지 않은 재가자와 출가자들이 ‘원장 퇴진’을 외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창피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아직 시기가 아니다. 국가 보조금이나 여러 종교 협의 단체의 ‘장’을 석권하고,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불교계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정치적인 ‘공’도 인정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보다는 ‘공’이 더 크다고 말하고 싶다.

위안부 문제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일본 가족 드라마를 보면 일본 사람들이 가끔 “이이도코로모 아룬자”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좋은 곳도 있잖나”라는 뜻으로 자신이 나쁘게 봐 왔던 사람들의 ‘진심’이나 ‘장점’ 등 좋은 점을 발견하고 흐뭇해할 때 나오는 대사다. 굳이 일본 영화를 빌리는 이유는 그것이 섬나라 일본이 만든 가치가 아닌 우리 전통 사회의 미풍양속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언젠가부터 몇 개 나쁜(대부분 자기 맘에 안 드는) 것을 가지고 그게 다라고 하며 좋은 것은 ‘조금뿐’이라며 ‘대세’로 말살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치킨게임’도 아니고 스스로가 그렇게 당한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을 남에게는 ‘자행’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스스로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는 사람에게서도 ‘좋은 점’을 찾아서 ‘칭찬’하는 것에 인색해졌다. 그런 악순환으로 우린 ‘정체 모를 불안’에 휩싸여 ‘부정적인 감정’으로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불교 출가자는 물론이고 우리 재가자들은 적어도 이래서는 안 된다.

원장은 자의든 타의든 그의 재직 시에 조계종의 부패와 타락을 세상에 알린 측면에서 그 공이 크다. ‘자정’의 측면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10년이나 100년 이후에 불교사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이건 전혀 명예훼손이나 모욕 따위를 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있었으면서도 거의 은폐되어 왔던 ‘은처’ ‘음주운전’ ‘성매매’ ‘문화재 절도’ ‘모텔운영’ ‘밀실야합’ 등등의 문제가 ‘현 총무원장 체제하에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갑작스럽게 지금 원장대에 와서 심해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말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 지금 드러난 사건들을 보면 그 일이 오늘 처음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 인정할 것이다. 모든 상처에는 ‘과거’라는 원인이 있다. 그게 오늘에 와서 곪아 터졌을 뿐이다. 어쩌면 누군가가 이런 상처를 일부러 세상에 조금씩 알려 폭로하며 총무원장 후보가 될 수 있는 ‘라이벌’들을 하나씩 ‘명예살인’하고 있다면 어떨까? 

과거 정권의 언론플레이처럼 뒤에서는 딴 짓을 하거나 더 큰 사건을 덮기 위해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 스스로 총대를 메고 희생양이 되었다고 보면 어떨까? 사람이 아닌 불보살이나 신장의 뜻은 아닐까?

총무원장 한 명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우린 그걸 이미 학습해서 알고 있다. 문제는 머리로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갑자기 광복이 되고나서 우리는 ‘친일파’ 숙청이나 처단(?)은 아니더라도 ‘청산’의 기회를 잃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우리는 부패하고 타락한 ‘바라이’ 죄를 저지른 출가자라고 하기 부끄러운 이들의 뻔뻔한 모습을 알아내고 기억하면 된다. 

지금 와서 ‘친일파’ 목록을 작성해도 효과는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출자자’의 탈을 쓴 이들의 목록을 적어 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고 해도 늦지 않는다. 오래 전 쫓겨난 원장을 봐서 알겠지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보낸 ‘만족’과 ‘분수’를 알라는 것과 ‘시절인연’의 뜻을 새기면 작금의 조계종 사태의 ‘출구’는 이미 정해져 있다.

결국 ‘개혁’은 이뤄지고 ‘정화’도 이뤄진다. 지금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오염된 물은 언젠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반드시 정화된다. 이런 정화에는 오염된 것을 효율적으로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 스스로 정화의 축을 자처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 원장은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나쁜 승려’들까지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는 듯하다.

나아가 얼마 안 가 ‘치부’를 드러나게 하는 독특한 ‘힘’이 있는 듯하다. ‘밀고’와 ‘폭로’와 같은 고자질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는 원장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서 ‘나쁜 승려’들을 걸러내기만 하면 된다. 특별히 행동을 안 해도 출가승의 탈을 쓴 누가 지난날 어떤 짓들을 했는지만 제대로 알고 잊지만 않으면 된다. 원인 모를 병으로 끙끙 앓는 것보다 그 원인인 균의 실체와 원인 등을 바르게 아는 것이 바로 병을 고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속이 썩었는데 피부 밖에 난 염증 하나에 메스를 가져다 대면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아파도 너무 아프다. 성범죄 전문직의 대부분이 성직자라고 한다. 종교과세도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병원체의 원인이 완전하게 규명된 것이 아니다. 진단도 제대로 안 되었는데 고치겠다고 메스를 들고 ‘배’를 열 수는 없다. 원장 하나 제거한다고 온 몸에 전이된 암세포를 막을 수는 없다. 말기 암이니 부작용이 더 심할 수 있다. 좀 더 기다리면서 식이요법과 운동을 하면서 기초 체력을 기르면서 보다 구조적이고 구체적인 원인을 진단하고 고치는 ‘자연치유’ 방법을 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대의왕(大醫王)인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중생의 근본적인 고통[고]의 원인[집]을 끊는[멸] 방법[도]을 사성제로 가르쳤음을 잊어서는 안 될 듯하다.

진심으로 이 연극의 총체적인 기획이 원장인지 본부장인지 신장인지 불보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연극이 끝날 때, 이익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이익을 본 이가 범인인 것을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 범인(犯人) 아닌 범인(凡人)이 우리 중생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집단 무의식을 발현한 중생들이 바로 이 윤회하는 사바세계에서 너무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생이 곧 부처다. 

하도겸/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