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위인들이 이면 한눈에

최종등록 15-09-01 18:07 최종수정 15-09-01 18:07

온라인이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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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구타했던 시인 김수영, 처음 만난 여자에게 “나랑 잘래요?”라고 말했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 혁명을 꿈꿨지만 권력의 중심에서 지저분한 암투를 보여준 ‘조선의 이단아’ 허균, 평화주의에 가려진 보수주의자인 마하트마 간디, 관계파탄의 원인을 항상 상대방에게 전가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좌절과 도취를 반복했던 ‘인격장애자’ 스티브 잡스…. 

이런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책 ‘찌질한 위인전’은 뛰어나고 훌륭한 발자취에 가려졌던 위인의 이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 함현식은 동서양 근현대 위인 9명을 올바른 신념으로 점철된 완벽한 영웅이 아닌, 상처를 짊어지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인간으로 재조명한다.

“이 시(‘죄와 벌’)는 김수영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다. 내용 그대로 김수영은 길 한복판에서 그의 부인을 우산으로 두들겨 팬 것이다. 

그것도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고 부인 김현경의 말에 의하면 당시 김수영은 술에 만취할 때면 1년에 두세 번씩 아내에게 사정없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17쪽)

“파인만이 펼친 여성 편력의 스토리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라스베이거스의 쇼걸에서부터 흔한 바(Bar)의 여자 손님, 학부생, 대학원생, 윤락가 여인과의 하룻밤, 남편 있는 여자와의 불륜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염문을 뿌렸다.”(114쪽)

“이렇다 할 빼어난 능력과 인덕도 없이 권모술수와 처세로 권력을 손에 넣은 이이첨은 허균이 그토록 경멸하는 고위 관료의 전형이었다. 그와 손을 잡은 것도 모자라 권력 유지를 위한 진흙탕 싸움의 최전선에서 음모를 진두지휘했던 허균의 모습을 두고, 우리는 그저 혁명의 대의를 위해 잠시 구정물에 발을 담근 것이라 이해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157쪽)

“불가촉천민의 대표들은 자신들이 독립적으로 선거구를 갖기를 강력하게 희망했다. 그러나 이를 극렬하게 반대하고 막아섰던 것이 간디였다. 간디는 만약 그렇게 되면 불가촉천민들이 영원히 카스트 제도에서 분리될 것이라며 반대의 이유를 밝혔다.”(200쪽)

“헤밍웨이는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떠나기 전에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혼자 남고 상처받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결혼 생활마다 간통을 저질러 아내들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방어했다.”(240쪽)

“브래넌의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잡스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무시’였다. 배 속의 아이가 자신의 자식일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잡스는 인터뷰에서 통계적으로 미국 남성의 28%가 리사의 아버지일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한 바 있으며, 리사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그는 한동안 딸과 자신이 얽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300~301쪽)

까면 깔수록 놀라운 위인의 모습은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위인의 얼굴에 먹칠하는 데 있지 않다. 저자는 “그들이 위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에게 남긴 어떤 업적이나 작품과 같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닿기까지의 과정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하며 그들이 왜 ‘지질한’ 모습을 갖게 됐는지, 그리고 그 ‘지질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함께 알려준다. 

위인에게도 지우고 싶은 과거와 불안한 미래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과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한다. 못나고 변변치 않은 그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우리가 맞닥뜨린 좌절과 슬픔을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결국 ‘고난과 역경을 딛고 업적을 이뤘다’는 기존 위인전이 주는 교훈을, 비록 뒤틀린 모습이지만 이 책에서도 배울 수 있다.

외전으로 타인을 향한 증오로 ‘세기의 악마’가 된 파울 괴벨스, 패배감이 만연한 시대에 새로운 위인상을 제시한 무명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故 이진원)’의 이야기도 다뤘다. 

참고로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라는 뜻을 지닌 표준어는 ‘지질하다’이지만, 이 책에선 대중적으로 쓰이는 정도와 어감의 차이를 고려해 ‘찌질하다’를 사용했다. 340쪽, 1만4800원, 위즈덤하우스.


◇뉴턴과 화폐위조범…토머스 레벤슨 지음/ 박유진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420쪽/ 1만8000원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천재과학자. 우리가 ‘아이작 뉴턴(1642~1727)’이란 이름을 들으면 바로 생각하게 되는 이미지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인생 전부는 아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35년간 과학연구를 지속했던 뉴턴은 1695년 53세의 나이에 영국 조폐국으로 자리를 옮긴다.

 4년간 감사로 근무하며 화폐 위·변조자 수십 명을 추적·체포했고, 이후 27년간 조폐국장으로 재임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뉴턴의 과학적 업적 대신 그가 어쩌다 조폐국에서 탐정 노릇을 하게 됐는지에 집중한다. 

저자는 각종 뉴턴 전기는 물론이고, 뉴턴과 지인 간의 편지, 당시 조폐국 문서와 재판 기록 등을 근거로 그의 인생을 다시 복기한다.

 특히 뉴턴뿐 아니라 그의 맞수였던 ‘천재 화폐위조범’ 윌리엄 챌로너의 인생사도 함께 훑으며, ‘화폐위조의 황금기’였던 17세기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두 천재의 두뇌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수많은 전기 작가들이 저마다 뉴턴을 다른 모습으로 묘사했지만 진짜 아이작 뉴턴은 하나의 삶을 영위한 한 사람이었고, 그가 살아가면서 취한 부분적인 모습들은 전체와 완전히 부합했다”(242쪽)는 저자의 말처럼 진짜 뉴턴의 삶을 만나 볼 수 있다.

◇사임당…임해리 지음/ 인문서원 펴냄/ 308쪽/ 1만7000원

‘현모양처’의 대명사, ‘대성현’ 율곡 이이의 어머니, 조선 최고의 여류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사임당(1504~1551)의 모습이다.

 그가 우리나라 최고액권인 5만원 지폐의 주인공으로 결정됐을 때 여성계는 크게 반발했다.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낡은 가치관의 상징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임당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 때 식민지배 이데올로기 주입의 일환으로 ‘어머니’의 역할만 강조해 왜곡한 신화라고 말한다. 

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 조선은 남자가 장가를 들어 처가살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여성은 재혼·삼혼까지도 했다. 혼인한 딸도 친정 유산을 상속했고, 제사도 아들·딸이 돌아가며 지냈다. 

이 책은 조선 초기 시대 풍경을 상세히 설명하며, ‘주체적 여성’으로 살았던 사임당의 삶을 재조명한다.


 자신의 당호를 직접 지을 만큼 당찼던 어린 시절부터 48세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기까지의 일대기를 훑는다. 

“부귀영화를 좇기보다 뜻을 세워라”고 가르친 자녀 교육관, 뛰어난 예술적 성취로 당대를 풍미했던 ‘화가 신씨’의 업적도 함께 살핀다. 마지막으로 사임당의 이미지가 왜, 어떻게 뒤틀리게 됐는지도 파헤친다.

 자기완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인간’ 사임당의 민낯을 만날 수 있다.



/고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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