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형제가 부산떨던 어린 시절의 설날 추억은 정겹기만 하다.부모님이 장만해준 설빔으로 갈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다, 배고팠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섣달 그믐날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된다는 말을 믿고 졸린 눈을 비비며 버티던 일, 새벽녘 복조리 장사꾼 소리 등이 아스라이 스친다. 제일 설렜던 건 차례를 지낸 후 어른들 앞에 나란히 서서 올리는 세배가 아닌가 싶다.세뱃돈을 받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부모가 되고 나니 그 좋았던 세뱃돈이 은근히 신경쓰게 한다. 적게 주자니 체면이 구겨지고 호기를 부리다간 지갑이 홀쭉해진다. 조카들에게 1만 원짜리 한 장 내밀다간 낯이 뜨거워질 테고, 신 사임당권을 선뜻 쥐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얼마를 줘야 하나 주머니 사장도 그렇고...세뱃돈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뱃돈 주는 풍습이 우리 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중국에선 붉은색 봉투에 새 돈을 넣어 덕담과 함께 건넨다. 
 
 이를 압세전(壓歲錢)이라 부른다. 돈을 많이 벌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새해를 상징하는 연이나 매화가 그려진 봉투에 돈을 넣어 준다. 에도 시대부터의 관행이다. 몽골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세뱃돈을 드리고, 윗어른은 아랫사람에게 선물을 건네는 풍습이 전해 온다. 
 
 우리의 경우는 세배에 대한 성의 표시로 곶감·대추 등 과일과 음식을 나눠 줬다.돈을 주고 받는 걸 천하게 여긴 탓이라는 게 민속학자들의 추론이다. 일제 강점기 후 퍼진 세뱃돈 문화가 으레 주어야 하는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이 모두가 한 해를 풍성하고 건강하게 지내라는 기원이 담겨 있을 터다.

 ▲민족의 설 명절, 세뱃돈으로 쓸 신권을 구하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특히 수요가 많은 1만 원권은 늑장 부리다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일부 은행은 ‘세뱃돈, 깨끗한 돈이면 충분’이라는 캠페인을 펼칠 정도다.하지만 신권이면 어떻고 헌 돈이면 어떠랴. 세뱃돈을 받아들고 뿌듯해 하는 건 매한가지다.

 서민들의 삶이 곤궁해지고 일자리 잡기가 어려운 요즘이다.어떻든 고달프지만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게다.신권 바꿀 여력조차 없는 이들도 적잖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친지들이 모여앉아 왁자지껄하며 얘기꽃을 피우면 시름이 저만치 물러난다.금세 커버린 아이들이 세뱃돈 받아들고 좋아하는 모습도 큰 즐거움이다.

 이옥수/지방부 부안주재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