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계절과 농경의 신이다. 제우스의 아버지이기도한 그는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는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죽이고 신이 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게 아니었다. 언젠가 태어날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길 것이란 숙명을 대신 안아야 했다. 음습한 욕망과 죄악의 대가였다. 어쨌든 그는 이 일로 인해 계속 불안과 두려움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 때 그의 아내 레아는 매일 한 명씩 아들을 낳았다. 크로노스는 그 때마다 태어난 아기를 삼켜버린곤 했다. 그래도 아내 레아는 매일 어김없이 새 아기를 한 명씩 출산했다.
훗날 이성의 계절이 되자 사람들은 이 크로노스를 ‘시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레아의 어김없이 반복되는 출산처럼 정확히 다가왔다가 흘러간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정확하고도 가차없는 하나의 질서이자 흐름이다. 안타깝게도 크로노스적 시간의 개념 속에는 적어도 아무런 ‘희망’이 없다. 레아가 낳은 아기를 삼킨 직후의 짧은 순간 동안만 안도가 있을 뿐, 불안과 두려움의 반복이 숙명처럼 작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시간을 살아왔고 시간과 함께한 인류의 역사는 이 같은 시간의 속성을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난 인류의 역사가 순간의 영광을 빼놓고는 대부분 숱한 배반, 그리고 살육과 후회와 고통으로 얼룩졌음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영광은 순간이었고, 갈등과 고통은 길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면서도 오히려 증폭되는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인류의 모습은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우리는 또한번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라는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다. 물론 그것이 인위적인 세월의 매듭에 불과한 것이지만 언제나처럼 그 의미는 각별하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변을 정리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설사 아무런 성과도 없이 또한번, 아니 연속적인 실패와 좌절을 겪어왔을 지라도 아직은 스무날 이상이 남았기에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올해 역시 우리는 너무 힘들고 어려웠었다. 때아닌 연평도 포격, 그칠 줄 모르는 이념갈등, 끊임없는 편가르기, 간단없는 정쟁 속 정치 실종, 경기장기침체, 부익부빈익빈, 취업난, 고용불안과 개인파산 급증, 중산층 붕괴, 강력사건의 증가와 범죄의 흉포화, 연이은 성폭행 사건, 지방선거와 그 후유증들 등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싫은 악재들로 점철됐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그 어디를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작동이 아니었다. 수년간 마찰음 속에 계속 삐거덕거리며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진 것도 없었다. 어찌보면 절망의연속였지만 그래도 새 날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더없는 과학기술과 찬란한 의술발달 등으로 다시없는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며 여기까지 당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기에 크로노스적 시간개념으로 살아가기엔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힘들게 힘들게 여기 12월까지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송년이기에 엄숙히 한 해를 정리해 보려하지만 너무 지쳐서인 지, 아니면 아직은 조금 기간이 남아선 지 정리할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나 정리를 위한 정리가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진정한 새출발-새해맞이를 위해 우리는 비록 힘들더라도 지난 한 해를 알차게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알찬 마무리에는 인간관계 복원이 뭣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아버지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상사로서, 부하로서, 아니면 친구로서, 또는 선후베로서 내가 누군가를 가슴아프게 했다면 이 해가 가기 전에 그것부터 풀어야 한다. 그 화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 부회장 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