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깡패와 굿패 2부 '굿패와 무당'(12) - 한번 불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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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했으면 아주 큰데서 했겠네요.”
“창경원에서 했어.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내가 그동안 굿판을 여러곳 다녔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굿판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니까. 뭐 미군들이 지원을 해줬다고 그러는데 심지어 김구 선생도 오셨다고 하더라고.”
“김구 선생님이요? 보셨어요?”
“아, 굿하느라 직접 보진 못했지.”
남준은 자신도 굿 치는 걸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나중에 아버지처럼 대회에 나가 큰상을 받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절로 얼굴에 밝은 빛 같은 웃음이 동그랗게 퍼졌다. 남준의 그런 마음을 아버지 강병도는 이미 알고 있었고 꾸준히 악기 연주법을 가르쳐왔다.
타악기를 익숙하게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부는 악기도 잘 연주하는 것은 악사로서 중요한 덕목이었으므로 남준이 어렸을 때부터 강병도는 향피리나 세피리 연주법을 가르쳤다.
남준 또한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악기 연주하는 걸 받아드렸고 또 제법 그럴듯하게 다뤘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한기에 접어들고 농민들의 걸음걸이도 잰걸음에서 팔자걸음으로 바뀌듯 굿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익년 정월까지는 한산해진다. 날이 점점 가을로 푹 익어가는 무렵, 강병도는 남준을 불렀다.
“남준아, 톱을 들고 아버지를 따라오거라.”
“지게랑 낫도 가져갈까요?”
낫을 들고 오라는 건 뭔가를 베려는 것인데, 남준은 겨울철 땔감을 하러 가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싸리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옷차림도 일을 할 때 옷차림이 아니었다. 의구심 섞인 표정을 하고 남준은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오늘은 너에게 피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한다.”
강병도는 미리 봐둔 데가 있다며 남준을 데리고 마을 개천을 넘어 야산으로 올라갔다. 시누대나 조릿대라 부르는 마디가 긴 해장죽을 찾는 것이다.
남준은 아버지의 지시대로 적당히 자라고 가을을 몸에 깊숙이 담은 마디가 긴 조릿대를 몇 개 잘랐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는 화롯불을 준비했고 남준에게는 광에서 톱과 송곳, 사포 등을 가져오게 했다.
아버지는 마디가 없는 시누대 부분을 두 뺨 크기로 잘라 화롯불과 사포를 이용해 잔 가시랭이를 제거한 뒤, 손마디로 길이를 가늠해가면서 화롯불에 달군 송곳으로 대의 한 면에 일곱 개의 구멍을 뚫었고 다른 면에 한 개의 구멍을 냈다.
아버지는 여러 번 피리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지라 구멍을 내는데 길이와 구멍 크기가 적절하고 일정했다.
관대를 만든 다음 아버지는 관대에 연결해서 입으로 불 수 있는 서를 만들었는데, 관대를 만드는 것보다 아버지의 손놀림은 더 조심스러웠고 세밀했다.
시누대를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잘라 안쪽과 바깥을 사포질했고, 바깥을 칼로 다듬어 껍질을 벗겨낸 뒤, 대의 두께를 봐가면서 매끄럽게 다듬었다.
다듬은 대를 적당한 힘을 줘서 납작하게 만들어 관대에 연결한 후 철사를 불에 달궈 감았고, 관대에 붉은 명주실을 감아 피리를 완성했다.
“한번 불어 보거라.”
방금 태어난 향피리는 산과 들판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남준이 관대를 잡고 서를입에 문 다음 조심스럽게 바람을 불어넣자 나무와 풀과 바위와 시냇물이 집안 가득 펼쳐졌다.
가을 찬바람이 불면서 정식 굿 연행은 줄어들었지만 아버지 강병도는 한가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마을에서 장구나 꽹과리를 배우겠다고 강사로 초빙했던 것이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 남준은 그런 아버지를 따라나섰고, 사랑방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아버지가 가르치는 장구와 북, 꽹과리와 소고를 배웠다. 집에서도 물론 따로 아버지에게 사사했으며 어머니 신동댁도 장구와 북을 잘 다뤘음으로 어머니에게서도 장구와 북을 습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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