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도 법이다
국립국어연구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이런 문구가 뜬다. “요즘 외국어를 자주 써서 우리말이 아파요. 이젠 우리가 직접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어 봐요. 어디에 가든지 온통 눈에 띄는 것은 외래어, 외국어뿐입니다. 세계화시대, 국제화시대라서 그런가요?”
물론, 급변하는 국제화ㆍ세계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외국ㆍ외래어 등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가 너무 남발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분명 그 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본다. 아파트 이름에 이상야릇한 외국어 이름을 붙이고, 각종 상호나 간판에도 의미 없는 영어를 쓰는 것이 왠지 눈에 거슬린다. 이런 정서의 밑바닥에는 외국어를 중시하고 우리말을 가볍게 보는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보의 바다라고 일컫는 사이버에서는 가히 ‘언어파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말 훼손이 심각하다. 특히 10대들은 거의가 은어나 비속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생과 성인들도 단시간 내에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을 줄여 쓰고 있다.
예들 들어 설(서울), 셤(시험), 겜(게임), 드뎌(드디어), 멜(메일), 걍(그냥), 글구(그리고), 첨(처음), 안냐세여(안녕하세요), 방가(반가워요), 넘(너무), 어솨요(어서 오세요), 우녕자(운영자), 머시따(멋있다), 커메서(컴퓨터의 줄인 말, 컴퓨터에서), 인가니(인간이), 절머(젊어), 가튼데(같은데), 일거써(읽었어), 아라쩌(알았어), 뎐(돈), 슬포(슬퍼), 랑(신랑), 짜식(자식), 꽁짜(공짜)실쑤(실수), 추카(축하), 조타(좋다), 칭구(친구)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자주 헷갈리는 게 받침이다. 국어선생은 물론, 내로라하는 학자들조차도 받침을 잘못 적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맞춤법 공부를 게을리 했을 수도, 맞춤법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자주 틀리게 적는 말 중에 ‘색씨, 깍뚜기, 갑짜기, 몹씨, 덥썩, 법썩, 납짝, 껍떼기, 껍찔’ 들이 있다. 소리는 그렇게 나지만 적을 때는 ‘색시, 깍두기, 갑자기, 몹시, 덥석, 법석, 납작, 껍데기, 껍질’ 로 적어야 맞다.
그렇다면 ‘어깨, 오빠, 이따금, 잔뜩, 살짝, 담뿍, 몽땅’ 들은 왜, 소리 나는 대로 적는가? 또 ‘널따랗다, 좁다랗다, 기다랗다, 짤따랗다’는 무엇인가? 왜, ‘넓다랗다, 길따랗다, 짧다랗다’ 로는 안 쓰는가? 왠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바로 맞춤법의 필요성이 생긴다.
맞춤법에서는 ‘한 단어 안에서 별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며, 그 조건을 ‘두 모음 사이’와 ‘ㄴ, ㄹ, ㅁ, ㅇ 받침 뒤’에서 나는 된 소리로 한정하고 있다. ‘ㄱ, ㅂ’ 받침 뒤에서는 자연스럽게 된소리가 나므로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고 했다.(제5항) ‘널따랗다, 좁다랗다, 짤따랗다’도 이 조건에서 해결된다. ‘넓다랗다, 짧다랗다’는 ‘넙따라타, 짭따라타’가 아니라 ‘널따라타, 짤따라타’로 소리 내므로 소리 따라 적고, 좁다랗다의 ‘다랗다’는 ㅂ바침 뒤여서 된소리로 적지 않는 것이다. ‘길따랗다’는 ㄹ받침소리가 아예 없어진 채 소리 나므로 ‘기다랗다’로 적는다.
이처럼 소리와 형태를 두루 갖추어 적으려다 보니 예외가 많아지고 맞춤법이 너무 까다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가에는 법률, 명령 등이 있다. 마찬가지로 국어에도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있다. 국가가 정해놓는 법을 어겼을 때는 분명 처벌을 받지만 우리말 규정을 어겼다고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을 지키는 것은 국민들 간의 약속이다.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언어생활에 혼란이 올 것이다. 올바른 언어생활을 하려면 늘 국어사전을 가까이 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한글의 파괴를 최소화하고 우리말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이 필요한 때다. 정부나 시민단체, 또는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공론의 장을 만들어 대책을 논의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 한글에 대한 체계적인 정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떠도는 것을 바른 한글로 오인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신영규/한국신문학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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