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만경강변을 산책하다 보니, 어느덧 내가 만경강의 아침 손님으로 자리잡혀지게 된 모양이다. 강변에 들어서면 먼저 부스스 잠에서 깨어난 풀떼기들이 눈인사를 해오고, 잠을 턴 참새들도 포르르 나무 위로 날아올라 반기는 몸짓들을 해온다. 비둘기 무리도 뒤뚱뒤뚱 앞장을 서고, 흘끔흘끔 돌아보다 풀떼기 숲으로 몸을 숨겨 버리는 앙증맞은 고양이까지. 

만경강은 완주에서 전주를 거쳐 흘러가는 거대 강줄기로서, 완주의 동상면 사봉리 계곡에서 발원해 고산, 소양, 봉동, 전주, 삼례, 해전, 군산을 거쳐 서해로 빠져나가는 대장정 여정이다. 

2km 정도의 거대 강폭, 오랜 가뭄으로 모래바닥에 옹기종기 버드나무와 아카시아와 산딸 나무 등의 수풀임, 더러더러 물웅덩이가 있기는 해도 풀떼기들로 강폭은 녹색 이불에 굽이굽이 덮여있는 모양새다. 이불을 떠올리니 형제들과 이불자락 잡아당겨가며 실랑이를 벌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숨이 차오른 삼복의 열기에서 풀떼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키 재기로 쑥쑥 커져가고들 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속인들의 권모술수와 달리 이곳은 어우렁더우렁 서로를 껴안으며 성장들을 해가고 있는 모양새들이다. 

꿩이 둥지를 틀어도, 고라니가 뜀뛰기를 해도, 고양이가 쥐잡기 드잡이를 해도 따갑게 엉기며 휘감아 오른 가시덩굴, 산삼덩굴까지도 곁을 내어주는 모양새들. 너그러이 품어 안은 만경강의 넓디넓은 가슴자락. 

보아라! 켜켜이 쌓이고 쌓인 세월만큼이나 빽빽하게 들어찬 강바닥의 모든 풀떼기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곤 호기롭게 외치는 듯한 만경경의 저 담대한 몸짓. 

이런저런 갈등과 괴로움 등으로 정리가 되지 않아 복작거리던 나 자신으로서도 이곳에만 들어서면, 우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 싶게 훌러덩훌러덩 비워져버리고 만다.   

치유의 공간이기도 한 만경강. 동지, 소환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로 순환해가는 만경강의 순환절기. 

이다지 오묘하고 절묘한 절기의 순환 대열에서 나 또한 자연스레 동화가 되어져버리고 만다. 아침이슬의 청순함. 이 청순함에 빠져들어 찍어도, 찍어도 질리지 않는 다양성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행복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오전 9시가 훌쩍 지나 있다. 찍어도, 찍어도 밀려드는 모델들. 돌아갔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여전히 만경강변에서 벗어날 줄을 모르고 있다. 

바람이 있고 없고, 습도가 있고 없고, 날씨가 맑고 흐리고, 비가 오고 안 오고에 따라 친구들의 모양새와 빛깔은 천차만별이다. 오늘처럼 날씨가 청명한 날엔 초롱초롱 영롱한 이슬들의 다채로운 모양새에 더더욱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재현이 불가능한 이 모양새들, 우주에서 온 이 이슬 친구들이야말로 나에게는 진짜 보석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찍고, 찍고, 찍어도 연이어 잡혀들기만 한 이슬 친구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달맞이꽃까지도 해맑은 웃음으로 소녀처럼 수줍게 얼굴을 디밀어온다. 

황금계곡, 야생방풍, 갈퀴덩굴, 망초 등 모두 놓아주지 않는 나의 모델들. 넘치고 넘쳐난 모델들에 에워싸여 찍고 있는데, “사진사가 나타났다.”

자전거 하이킹 족이 윗길을 내달리며 외치고 지나간다. 사진을 찍어오다 보니, 산책하는 이들이거나, 자전거 하이킹 족이거나 간에 나라는 존재가 사진사로 인식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그들로서는 별다르게 찍을 건더기가 없어 보인 풀떼기를 들여다보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럽거나 한심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경강 풀떼기와 우주에서 온 친구들과의 만남, 이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알 까닭이 없는 그들.

이제는 두둥실 떠오른 햇살에 우주에서 온 친구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사인을 보내온다. 완주, 전주, 삼례, 이곳 해전을 거쳐 흐르는 거대한 만경강, 보고 보아도 질리지 않은 보물덩어리들. 전주, 삼례, 이곳 해전은 산책인 이거나, 자전거 하이킹 족이거나 간에 다양한 풀떼기들 마냥 우리네도 얼크러설크러 어울려온 푸르디푸른 만경강의 주변인들. 마찬가지로 티격태격 이전투구 아수라 속 세상 사람들에게도 넓디넓은 만경강의 오지랖을 척 걸쳐주고만 싶다. 

                

형경숙 / 소설가  

**형경숙 작가는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서울예술신학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4년 월간 '순수문학' 벙어리 뻐꾸기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노란 다이아몬드와의 이별식', '바람의 그 언덕' 외 다수, 단편집 '언덕 위의 수레바퀴'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