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고택 기둥에는 반일정좌 반일독서(半日靜坐 半日讀書) 라는 주련(柱聯)이 있다. 하루의 절반을 고요히 앉아서 자신과 만나는 명상을 하고, 또 나머지 절반은 책을 읽으면서 옛 성현(聖賢)들을 만난다는 뜻이리라. 추사가 누구인가. 조선 5백 년 역사상 학문이 깊고 예술이 높은 최고의 인물을 꼽으라면 우선적으로 생각나는 거장이 아닌가. 반일정좌 반일독서는 과연 추사다운 선택이다.
@추사가 반일정좌하고 반일독서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가 벼슬살이를 할 때는 공무가 바빠서 그게 불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벼슬살이에서 물러났을 때는 그게 가능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는 그게 날마다 몸에 배었을 것이다. 반일정좌하고 반일독서하는 생활의 반복으로 그는 힘을 냈을 것이다. 고통스럽고 쓸쓸한 내면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그의 학문은 소나무의 뿌리처럼 깊어지고 그의 예술은 잣나무의 우듬지처럼 높아진 것이다
@자신을 간서치(看書痴)라고 자호한 이덕무를 생각한다. 그는 어떤 책들을 읽었고 또 자신이 읽은 책을 몇 번이나 숙독했을까. 그리고 몇 권이나 되는 책들을 읽었을까. 자신을 간서치라고 자호한 것을 보면 그는 독서하는 태도가 보통사람들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그는 책 읽기로 인생을 소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고 또 그것을 즐겼을 것이다.
@나도 자신을 간서치라고 여기고는 있으나 감히 자호할 만큼은 아니다. 가지고 있는 책도 많지가 않고 독서량도 빈약한 탓이다. 그리고 읽은 것도 문학 관련 서적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올해는 인류의 영원한 고전인 성서를 통독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성서를 네 번 통독한 기록을 갖게 된다. 이번의 통독은 지난날의 정독보다 훨씬 치밀한 정독이 될 것이다.
@내 친구 중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을 영어로 읽어낸 이가 있다. 그가 불문학도가 아니고 영문학도인 까닭이다. 나는 불어도 모르고 영어도 모르므로 국문으로 번역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흘러간 지난날이 매우 아쉽다. 읽다가 책을 내려놓고 다시 읽다가 책을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 것일까. 하지만 올해는 끝까지 끈기 있게 읽어내려고 한다. 그러면 두뇌 속에 분비되는 엔돌핀은 봄날의 꽃나무처럼 만발할 것이다. / 논설위원 이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