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미인(美人)이라고 한다. 여기서 용모(容貌)란 단순히 얼굴만이 아닌, 전신 및 차림새까지를 포함하리라. 그러나 오늘날 미인의 기준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세련된 서구적 얼굴로 한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돈 없고 교양 없는 여자는 봐줄 수 있어도 얼굴 미운 여자는 못 봐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말해주듯, 요즘 미인의 기준은 내면의 아름다움은 무시된 채 지나치게 외모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옛날에는 미인을 보는 기준이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단순히 여성미 그 자체만을 보기보다는 온화하면서도 덕성이 담긴 얼굴을 미인으로 쳤다. 김은호 화백이나 김기창 화백의 미인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고전미 넘치는 미인들은 한결같이 청초하면서도 단아한, 그러면서도 기품과 덕성까지 넘쳐 보이는 모습이다.   

 행(幸)인지 불행(不幸)인지 요즘 젊은 세대들은 미인 아닌 사람이 별로 없다. 쌍꺼풀눈에 오뚝한 코는 기본이고 V라인 얼굴에 몸매까지 늘씬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성형수술 덕분이고 순수한 자연미를 지닌 얼굴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TV속 젊은 연예인들을 보면 대개가 인조인간처럼 보인다. 이런 성형 바람은 점차 중년층과 노년층으로까지 확대되어 이제는 일반인들 중에도 성형미인이 많다. 내 주변에도 성형이나 시술을 한 사람이 적지 않다. 통계에서도 나타났듯 인구 대비 우리나라 성형수술 비율은 세계 1위라고 한다. 성형 부위도 상상을 초월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못 고치는 곳이 없다.

 이런 흐름을 타지 못하는 나는 어딜 가도 미인 축에 끼지 못한다. 외까풀의 작은 눈과 낮은 코를 가지고 태어난 전형적인 몽골리언이다. 평범한 외모에 주근깨 등 잡티는 왜 그렇게 많은지……. 이런 내 얼굴을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은 유명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소개하거나 아예 손을 잡아끌어 데려가려고도 한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귀가 솔깃해지기도 한다.

 미인 소리는 아니라도 한참 때 나도 ‘귄 있다’는 소리는 들으며 살았다. ‘귄 있다’는 말은 전라도 사투리로 예쁘지는 않으나 보면 볼수록 귀염성이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귀엽다는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사람들이 볼 때 그만큼 정이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나는 이 소리가 미인이라는 말만큼이나 듣기 좋았다. 

 최근에 들은 가장 기분 좋은 말은 ‘백제 미인’이란 호칭이다. 서울에 사는 한 친구가 전화 통화 중에 나에게 불쑥 이런 표현을 했다. 카카오톡에 올려놓은 육필원고 사진이 계기가 되었다. 이 원고는 최명희문학관에서 연 전북작가 육필원고전에 전시된 <사향(思香)>이란 내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었는데, 친구는 이 사진 한 장에 포스가 담겨있고 단아함, 단호함, 선비다움이 엿보인다고 했다.
 나라고 얼굴 예쁜 친구들이 왜 부럽지 않으랴. 그리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밉다는 말보다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리 못생긴 나에게 미인, 그것도 백제 미인이라니……. 삼국 중 가장 글로벌했고 가장 세련된 문화를 이루었던 백제, 그런 한편으로 가장 소박하고 온화하고 조화로웠던 백제인, 고맙게도 친구는 내가 이런 이미지라는 것일까.

 미래학자들은 정보화 사회 다음으로 외모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외모에 따라 소득의 많고 적음까지 결정된다는 주장은 벌써부터 수치로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현상으로 볼 때 외모 지상주의는 앞으로도 성형을 더 부추길 것이다. 하지만 한 인생의 얘기가 그대로 담겨 있는 정직하고 진솔한 매력의 맨 얼굴은 존중되어야 한다. 나는 양귀비나 크레오파트라도 부러워 할 세월의 흔적과 인생의 연륜이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소박하고 친근한 얼굴을 좋아한다. 그러한 까닭에 앞으로도 나만의 표정을 만들며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전 하 연/수필가ㆍ초등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