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쯤 됐을까? 그 당시 나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쓴 ‘여자란 무엇인가.’ 란 책을 세 번 정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도올 선생이 동양사상을 일반인들이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동양사상입문특강’으로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글로 정리한 일종의 강의록이다. 말을 글로 옮기면서 대학생 중심으로 했던 난해한 단어들이나 문장들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교적 부드러운 단어들과 알기 쉬운 문장들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상스런 욕설이 자주 나온다. ‘이 새끼’, ‘저 새끼’는 물론 남녀성기를 빗댄 노골적인 욕설이 다반사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도올의 강의를 수강 중 도올에게 ‘왜 그렇게 욕을 자주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올은 곧바로 그 학생에게 욕을 했다. “야이 개××야! 내가 언제 욕을 자주 했냐?” 그 학생은 곧바로 울먹이는 표정을 하고 말았다. 도올은 이어서 말을 했다. “나는 욕을 자주 하지 않는다. 오직 욕이 필요한 상황에만 한다. 욕이 필요한 상황이란, 상대에게 강력한 나의 의사표현을 하기 위한 순간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언어란 지나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거칠게 입을 놀린들 상대가 수신하지 않으면 모든 언어는 무력하다. 그리고 근원적으로 욕이란 힘의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상대를 향하여 구사하는 언어다.”
  욕이란 무엇이며 언제부터 등장했는가. 우리의 고전 문학작품을 살펴보면 욕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판소리에는 ‘이 년, 저 년’부터 시작해서 입에 담기 어려운 악담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백치아다다’, ‘운수 좋은 날’, ‘동백꽃’과 같은 문학작품에도 욕이 들어있는 것은 우리네의 옛 삶 속에서 욕이 한 부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라고 야단을 쳐 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운수 좋은 날’, 현진건-
  그러나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욕들은 지금 우리들이 하는 욕과는 차이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거친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문학작품 속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한탄 섞인 욕들이 담겨져 있다. 힘들고 고달픈 삶을 욕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개인적인 일로 부산과 경남 양산을 자주 오간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언어가 전라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말이 노랫말처럼 리듬을 타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지금이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욕설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난무한다. 충격적인 것은 전혀 욕을 할 상황이 아닌데도 아이들이  수시로 씨발, 개새끼, 개자식, 미친놈, 병신, 머저리 따위의 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몇 달이 지난 후에 아, 이게 욕이 아니라 그냥 일상어구나. 하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긴 요즘 중고생 등 청소년들 사이에 “열라, 존나, 쩐다, 찌질이” 등 욕설 섞인 은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제 새삼스러울 것까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욕설문화와 그릇된 언어형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들의 의사소통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욕. 말끝마다 ‘C발’, ‘×나’, ‘△랄’ 등이 일상적인 수식어처럼 붙어 다닌다. 들으면 기분 나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욕을 우리는 언제부터 하게 된 걸까. 특히 TV나 영화에서 거리낌 없이 욕이 나와도 별 거부감 없이 바라보는 사회. 이미 욕설로 도배되다시피 한 인터넷 게시판과 수많은 댓글들. 메신저와 휴대폰 문자메시지에 오가는 원색적인 욕설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청소년들이 거침없이 욕설을 해도 제지하는 어른들이 없는 사회. 정작 욕하는 아이들을 숨어서 욕하는 어른들. 이미 ‘욕설 공화국’으로 변해버린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수많은 모순이 쌓이고 덮여서 욕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욕은 이런 모순을 깨달은 자의 말이고, 욕은 힘없는 자의 무기다. 그들에게는 권력도, 금력도 없으니 입심으로라도 세상을 향해 한마디 할 뿐이다.    

신 영 규/전북수필 주간 겸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