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생인 필자는 1960~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밥이 사실상 에너지원이었다. 쌀밥 구경은 명절이나 제사 등 큰일이 있을 때나 가능했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식구가 많던 가정에는 보리가 끼니 걱정을 덜어준 양식이었다.양푼이에 수북이 담긴 보리밥이 나오면 형제들은 앞다퉈 숟가락 다툼을 벌였다.
그마저 귀해 때론 고구마나 조를 섞은 반지기밥을 맛보는 일도 허다했다.밥그릇 역시 지금의 공기와는 비교가 안된다.
아버지에겐 그 큰 밥그릇이 넘치도록 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위에 솟은 밥의 양이 안에 담긴 양만큼이나 될 정도다.소위 ‘고봉(高捧)밥’이라 했다.
그 정도를 먹어야 무슨 일을 해도 했으니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밥이 곧 보약이었던 셈이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란 말이 있다.
쌀 한 톨에 일곱 근의 농부 땀이 배어있다는 뜻이다.그만큼 쌀이 소중하니 한 톨도 허투루 여기지 말라는 경구다.
불가에선 ‘쌀 한 톨 소홀히 하면 죄가 일곱 근’이라는 말이 전해진다.우리 국민에게 쌀밥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보릿고개가 닥칠 때마다 쌀밥을 가득 퍼 입에 넣는 것을 꿈꾸며 견뎌냈다.시인 김지하는 ‘밥은 하늘이다’며 밥에서 한국인은 이상향을 찾는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래서인가 간혹 혼자 밥을 먹을 때 밥엔 어떤 정서가 담겨 있음을 느낀다.갓 지은 밥은 따끈함으로, 식은 밥은 씹히지 않는 식감 탓에 괜히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내가 지금 밥값을 하고 있나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도 한다.
요즘 우리 국민들의 밥심이 갈수록 약해지는 추세라고 한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국민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84g이다.
한 공기 밥을 짓는 데 100g의 쌀이 든다고 하니 하루에 밥 두 공기도 안 먹었다는 얘기다.
조상들은 밥 잘 먹는 것을 최고로 쳤다.
밥그릇을 다 비우자마자 더 먹으라며 듬뿍 또 담아주는 밥을 장모의 사랑이 담겼다는 의미에서 ‘처가밥’이라 부르기도 했다.밥을 많이 먹는 것이 흉이 아니라 건강함을 상징했던 것이다.
특히 고봉으로 담긴 흰 쌀밥은 손님 접대로는 최고였다.학교 식당에선 밥을 꾹꾹 눌러 퍼달라는 학생들의 애교 섞인 요구가 빗발치곤 했다.
그런 밥이 천더기가 돼가고 쌀은 남아돈다니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그래도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왔다.

이옥수/지방부 부안주재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