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길었던 추석 연휴 기간에 북한이 갑자기 우리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코앞으로 다가온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북은 연기 사유로 우리 정부의 ‘행태’를 지목했다. 남북관계 성과에 대해 우리 정부가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결실’ 운운하며 이를 동족대결에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도 ‘돈줄’을 들먹이며 자신들을 중상했다고 했다. 이석기 내란음모 의혹 사건도 들먹였다. 특히 북한은 국내 일부 언론이 일본 아사히신문을 인용해 북한 김정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와 관련된 추문<북한 은하수 관현악단과 왕재산 예술단 단원 9명이 포르노를 제작했으며, 북한 경찰 인민 보안부가 이들의 대화를 도청하던 중 “이설주도 예전에는 우리들처럼 놀고 있었다.”는 발언을 입수 후 이 소문을 차단, 은폐하기 위해 예술단원 9명을 공개 처형한 사건>을 보도한 데 대해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 며 이산가족 상봉 연기 등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유로 이설주 관련 보도를 언급했다.
  북한의 이산상봉 연기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다. 대꾸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억지요, 완전 생트집이고 천박한 잔꾀에 불과하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쇄한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혈육을 찾아 만나도록 하자는 것이 어떻게 동족대결의 악용이라는 것인가. 또 이석기 의원 사건은 북한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닌 우리 내부의 법적, 정치적 문제일 뿐이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내정간섭 금지’원칙에도 어긋난다.
  이번 이산상봉은 60여 년 동안 참고 벼르던 일이었다. 특히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이산가족으로서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도 부천에 사는 90대 할아버지가 북한에 살고 있는 딸과의 상봉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숨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북한은 “남조선 보수패당의 무분별하고 악랄한 대결소동” 때문이라는 알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느닷없이 가족상봉을 무산시켰다. 이산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무자비한 폭력이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을 못 만나게 하는 건 천륜을 끊는 행위다.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번 이산상봉 판 깨기의 돌발적 행동에 세계는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다. 반면 자국의 이익과 결부된 행동이란 점을 감안하면 저들은 당연한 수순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이는 납득할 수 없는 비열한 행태다. 이산상봉 합의 서류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일방적인 회담 연기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이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분쟁 뒤에는 ‘국가 이익’이란 숨은 동기가 있다.”는 어느 직업 외교관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북한이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이런 파행을 단행했을까? 해석은 부분하다. 대체로 개성공단 정상화에 이은 금강산 관광 재개로 ‘돈줄’을 잡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을 내걸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 강경파의 득세론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박근혜정부 들어 북한이 계속 끌려가며 주도권을 상실한 데 따른 반발 내지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고 어디 상봉날짜를 잡아놓고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파기한단 말인가. 속이 밴댕이 속이다. 어디 화풀이할 데가 없어서 힘없는 노인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나.
  통일부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해 놓은 사람 가운데 생존자는 7만 2491명이라고 한다. 이중 이미 5만 6000여명은 세상을 떴고, 남은 이들도 절반이 80세 이상이다. 기다릴 시간도, 힘도 없다. 북이 지금과 같은 비인도적 행태를 되풀이하는 한 남북 간 신뢰는 요원하고 대결만 있을 뿐이다. 
  지난 반세기도 넘게 강제로 헤어져 혈육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의 한을 무엇으로 달랠까. 그리운 부모형제의 얼굴을 보고 손 한번 만져보기 위해 기다린 세월이 어언 반백년이 넘었다. 그들이 죽기 전에 만나볼 수 없다면 생사 확인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북한은 즉각 이산가족 상봉 연기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신뢰를 강조하고 원칙을 지키되 조속한 상봉 재개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신영규/전북문협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