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한 마리가 코코아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다가 잠결에 천둥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숲 속에 난리가 난 줄 알고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급하게 뛰어가는 토끼를 본 여우가 그 뒤를 따라 뛰었고 사슴, 멧돼지, 늑대, 원숭이 등 산중의 모든 짐승들이 목적도 방향도 없이 토끼의 뒤를 따라 뛰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 누군가 ‘도대체 왜, 어디로 뛰어가는 거야?' 하고 물었다. 그러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결국 맨 앞장을 섰던 토끼가 상황을 이야기하자 모두 나무 밑으로 가 보니 그곳에는 잘 익은 코코아 열매가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의미도, 목적도, 이유도 모르는 채 남을 의식하고 모방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이와 같다.
  전자는 비록 우화(寓話)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때론 체면이나 허례허식 때문에 타인의 행동이나 의견에 아무 생각 없이 동조하기도 한다. ‘남이 장에 가니까 씨오쟁이 지고 따라 간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는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또, ‘낙동강 잉어가 뛰니 사랑방 목침도 뛴다.’, ‘참께 들께 노는데 아주까리는 못 노나?’ 이 같은 속담도 다 남이 하면 따라서 한다는 말로 한자 고사성어로는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고 한다.
  요즘 항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딸 셋을 둔 강남부자의 사위들은 이렇다. 판검사, 의사, 교수. 이렇게 사위를 고르면 집안이 완벽하게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게 한국의 연줄 문화이다. 어떤 문제를 합리적 절차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권력이나 아는 사람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 비평적 사고는 쓸데없는 것이 돼버린다. 또 일부 대학생 중에는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품 핸드백을 사려고 장학금을 신청하는 이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참 한심한 일이다. 이를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을 교수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우린 항상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막 살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의 삶이 아닌 자신만의 고상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대부분 남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자존심이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서 큰 소리를 치기도 하고,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여기에다 일부 사람들은 명품으로 자신을 과대포장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이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말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자신감이 없는 삶이 되고, 공허한 삶이 되어서 때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 자체를 ‘눈치문화’라고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주면을 돌아보자.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남에게 있는 체 하기 위해서 고급차를 사고, 유명 메이커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든다. 이 같은 현상은 한편으론 주체성이 부족한 탓이다. 주체성이란 내가 나의 주인공이란 마음의 상태이며, 그 극치는 석가모니가 외친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경지다. 내가 우주에 있어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반이축 수천만인 오왕의(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스스로 반성해서 내 옳다면 천만인이 가로막아도 나는 나갈 것이로다.’ 는 신념적 행보를 요구하고 있다.
  나는 객체가 될 수 없는 것이 주체성이다. 객체가 되는 순간 나는 주체성을 상실한다. 주체성이란 주인의식이요, 독립이요, 해방이요, 선택이요,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부리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중심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시류에 좌지우지 된다. 특히 외부의 인기와 명성을 먹고 사는 직업인들은 감정의 진폭이 큰 경향이 있다. 최근 잇달아 발생하는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은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유행과 인기에 묻혀 사는 사람들은 개인생활도 행복하기 보다는 불행한 경우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채근담(菜根譚)’의 경구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잃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넓은 대지가 다 그가 노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물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역경을 짐짓 미워하고 순탄한 길만을 좋아한다. 털끝만한 일에도 얽매이기 때문이다.”


신영규/한국신문학협회 전북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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