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밤에 잠을 자다 지독한 악몽을 꿨다. 꿈속에서 지축이 흔들리더니 고층건물이 무너지고 산과 들이 땅속으로 서서히 가라안고 있었다. 참으로 전율이 오싹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그것은 곧 지구가 멸망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아! 내가 이제 죽는구나. 죽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드디어 세상 종말이 오는구나.’ 하며 공포에 벌벌 떨어야만 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기에 꿈을 깨고 나니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 후 불을 켜고 컴퓨터를 열어 지구 종말에 대한 꿈 해몽을 검색해봤다. ‘꿈은 반대다. 그러기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내용과, 조만간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 등 해석이 분분하였다. 그 꿈을 꾼 후 지금까지 특별한 재앙은 없었지만 때론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는다. 인류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벌이 죽음이다. 그래서 유사 이래 인류는 죽음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은 인류에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 주고 있기는 하지만 죽음이 진정 극복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우선 죽음을 논하려면 ‘삶’을 전제해야 한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 생명’을 생각할 때 그 생명의 시작은 우리의 흥미를 일으킨다. 혹시 독자들 중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다거나, 혹은 살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 부모님, 내 형제들, 기타 주변의 모든 환경들을 선택한 후 그 안으로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결국 우리의 탄생은 우리와 전혀 무관하게 은총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 주어진 은총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죽음’ 역시 언제, 어떠한 모양으로 나에게 닥칠지 전혀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러니까 한 일생이 전혀 나 자신과는 상관없이 시작되었다가 또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종교에서 다루는 중요 문제이다. 사후세계, 내세관 등에 대한 각 종교의 이론은 각양각색이지만 각 종교에서 믿는 절대자는 죽음을 극복한 존재로 보고 있다. 죽음을 극복했다는 것은 죽음과 싸워 이겼다는 것이다. 죽음은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기에 싸워 이겼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인가?
  성경을 보면 ‘사탄마귀’라고 하고, 불경은 ‘마구니’라고 하고, 유교의 경전은 ‘자신’이라고도 한다. 하여 성경은 예수가 사탄마귀와 광야에서 싸워 이겼다고 하고, 불경은 석가세존이 四魔(사마)를 이겼다고 하고, 유경에서는 자신을 이긴 자를 성인군자라고 한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자신이 세상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과의 사슬을 끊고 해탈을 얻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경제적, 육체적, 사회적 결핍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죽음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삶에서 보다 많은 것을 잃을수록 죽음의 무게는 더 가벼워진다. 삶에 더 많이 개입하고 깊숙이 관련될수록, 삶의 비중은 올라가고 죽음의 비중은 낮아진다. 무엇보다 죽음이라는 허구적인 관념 그 자체를 명석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또한 죽어본 적 없으면서 함부로 죽음을 말하면 안 된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은 실재하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삶과 그 삶의 완성, 그리고 째깍째깍 다가오는 완성의 시한이다.
  어둠이 빛의 결핍에 불과하듯이 죽음은 삶의 결핍에 불과하다. 인간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삶의 실패다. 삶의 공허다. 삶의 무의미다. 그것을 죽음이라는 단어로 대표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죽음은 얼굴이 없어서 무섭다.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두렵다. 귀신은 가짜다. 가짜라서 무섭다. 가짜가 아닌 진짜로 말하면,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이며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삶으로 다가서게 하는 신(神)의 수단이다. 아니, 진실로 말하면 인간은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삶이 고픈 것이며, 우리는 늘 삶에 굶주려 있다. 문제는 두려움 자체가 아니라 두려움의 증폭이다. 긴장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누구든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해갈 수가 없다. 죽음을 겁내고 거부하고 외면하기보다 스스로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준비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과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죽음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신영규/한국신문학협회 전북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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