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쯤이면 유정(有情)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하루가 다르게 꽃나무의 화관(花冠)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경부터 봉오리를 터뜨린 매화꽃이며 목련꽃만 해도 그렇다.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했구나 싶은 지금, 먼저 피었던 꽃송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시나브로 낙화하는 모습이다. 바람을 느낄 수가 없는데도 꽃 조각들이 땅 바닥에 서러운 흔적을 남기고 있다. 아까운 봄날이 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내 눈 앞에서 봄날은 알게 모르게 가고 있는 것이다.
두보(杜甫)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의 시편들을 다시 음미해본다. 먼저 그의 ‘절구(絶句)’를 속으로 외워본다. 학창시절에 처음 읽고서 감동한 이래 평생을 두고 뇌리(腦裏)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명편(名篇)이기 때문이다. 절구를 속으로 읊조리다보면 두보는 글로 훌륭한 그림을 그린 대화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시 속에 구사한 색채는 순도가 높다. 그리고 원색의 감각이 선명하다.

  강벽조유백(江碧鳥逾白)
  산청화욕연(山靑花欲然)
  금춘간우과(今春看又過)
  하일시귀년(何日是歸年)

  강물이 벽옥처럼 파래서 물새 더욱 희게 보이고
  산이 푸르니 꽃나무가 불붙은 것처럼 붉다.
  올 봄도 덧없이 지나가고 있나니
  어느 해 어느 날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도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시편이다. 사람들은 개화시절보다도 낙화시절에 무상함을 느끼기 마련인데 두보 시인도 그랬던 것 같다. 양자강 하류, 동남쪽 땅의 봄 풍경은 어땠을까. 이구년(李龜年)은 당 현종(唐 玄宗)의 총애를 받던 궁정음악가였다는데 그의 실력은 또 어느 정도였을까. 아득히 먼 시공간을 향해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내 상상력이 대형 시네마스코프처럼 3D 영화의 화면처럼 찬연하다. 

  기왕댁리심상견(岐王宅裏尋常見)
  최구당전기도문(崔九堂前幾度聞)
  정시강남호풍경(正是江南好風景)
  낙화시절우봉군(落花時節又逢君)

  기왕(岐王)의 댁에서도 늘 만나 뵈었고
  최구(崔九)의 집에서도 여러 번 들었지요.
  지금 강남 땅은 경치가 정말 좋은 때인데
  꽃 지는 시절에 또 당신을 만나게 되었구료.
 

이희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