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예보대로 호남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다. 기온이 갑자기 곤두박질쳤다. 추위를 몰고 온 눈이라서 반갑지 않다. 그래도 고장에 내린 첫눈이다. 첫눈은 손님이다. 첫눈에 대한 대접이 쌀쌀 맞아서는 곤란하다. 첫눈에 대한 정서가 냉랭해서는 인생의 살맛을 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생각을 좋은 쪽으로 틀어야 한다. 눈에 대한 아름다운 상념들을 전개하고 싶다. 그러면 나이가 들었어도 청춘시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눈은 신비하다. 눈의 결정체는 하나같이 육각형이지만 그 한 송이 한 송이가 독특하다. 쌍둥이가 하나도 없다. 그제와 어제 한반도에 내린 눈송이들의 수를 헤아려본다. 아니, 지구  상에 내린 그 모든 눈송이의 수를 헤아려본다. 억이라는 단어와 조라는 단어가 많은 수를 나타내고 있지만 눈송이들의 수에 비하면 어림이 없다. 경이라도 어림이 없고 해라도 어림이 없다. 그런데 그 많은 중에 똑같은 눈송이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눈송이 하나하나에는 프랙털 구조의 아름다움이 있다. 코흐 곡선의 아름다움이 있다.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설령 살림살이가 쪼들리고 있다고 해도 인생의 깊은 고민거리가 있다고 해도 그렇다. 눈이 내리는 날, 젊은 날의 추억을 음미하는 것은 낭만이다. 그리고 그 낭만을 가슴 속에서 다시 레시피하는 것은 예술이다. 그래서 나는 시인 김광균의 <설야>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재구성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나는 시인 김은자의 <초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재구성하는 버릇이 있다.
@아다모의 <눈이 내린다>를 들을 때면 어떤 가수가 그립다. 거의 40년 저쪽의 일이므로 그 어떤 가수를 기억해주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수는 <눈이 내린다> 만큼은 김추자보다도 은희보다도 이성애보다도 잘 불렀다. 그 가수의 이름은 루비나이다. 그런데 그 루비나가 이 고장 사람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던 생각이 난다.
@눈이 내리는 날,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는 것은 행복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읽거나 오마 샤리프와 쥬리 크리스티와 제랄딘 채플린이 나왔던 영화의 장면들을 회상하는 것도 행복이다. 그리고 귀가 밝아서 샤미센 소리를 듣거나 발랄라이카 소리를 듣는다면 금상첨화이다. 인생의 장수가 좋은 이유를 더욱 실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이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