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연두색 잎이 피기 시작한 가로수들은 가벼운 봄비에 촉촉이 젖어 생기를 뿜고 있고 건너다보

이는 집들과 그뒤의 산은 아침 안개 속에 자욱이 가라앉아 모두가 고요하고 평화스럽기만 하

다.
 4월의 아침은 이렇게 희미한 속에 풍성하게 또 윤택하게 밝아 오고 있다. 안개 속에 잠겨있

는 모든 자연과 그 속의 삶의 모습들은 마치 추상화의 한 폭처럼 알 듯 모를 듯 불확실하다.

우리는 그 안개 속의 저쪽처럼 희미하고 불확실한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을 불안해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불확실 속에서 불안보다는 오히려 희망을 느끼고 있다. 건너다보이는 삶의

저쪽의 모든 것을 안다면 오히려 우리는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모르기 때문에. 희미하기 때

문에 우리는 차라리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걸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지 (未知)의 세계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꿈과 희망을 걸 수 있는 미지의 내일이 있기

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오는 날이 좋고 아침이 좋고 창이 좋다.
 더구나 아침에 내리는 봄비는 축복처럼 내 가슴을 적셔 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삶의 엄숙

함을 축복해 주는 듯하다. 봄비 속에 나뭇잎들이 푸르게 자라나듯 내 마음속에 잠들었던 가지

가지 축복의 잎새들이 눈을 뜨고 있다.
 또 자신은 물론.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살펴볼 때 어느것 하나 축복 아닌 것이 없다. 축복속

에 태어난 나의 생명.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 모두가 나에게는 축복으로 와진 것들이다.
 방 안에 쌓여 있는 책들도. 해마다 모아 놓은 카드들과 정다운 편지들도. 하나하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선물들도 모두가 축복의 모습으로 나를 에워쌓고 있다.
 축복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축복에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서로 만나질 때 이루어 지는 것

이다. 때로는 그 축복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에선가

확실히 와진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는 축복받기 위해 만들어지는 행사도 얼마든지 있다. 결혼식이라든가 생

일 잔치. 입학식. 졸업식. 출판 기념회 등 수많은 모임을 통해 우리는 축복을 받고 또 축복

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날의 가장 훈훈한 삶의 표적이라고도 하겠다.
 소리 없이 봄비 내리는 창 밖을 내다보며 나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받은 많은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매마른 땅에 비가 내리듯. 내가 매말라 잊고 버려져 있을 때 축복의 단비가 나

를 소생케 해주고 먹여 주지 않았던가!
 사람은 떄떄로 절망할 때가 있다. 또 오판으로 인해 실수할 때가 있다. 나 역시 수없는 인생

의 고비를 겪으며 태양이 죽은 것처럼 절망해 죽음을 생각할 때도 있었고 자칫 판단 착오로

인생의 큰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기고 견디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어디에선가 와진 축복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제를 생각하며 미련과 추억에 연연하기 보다는 미지의 내일을 위해 살아가

고 있다. 미지의 대륙을 밟는 기대를 안고 우리는 날마다 우리들의 새 아침을 맞이 하고 있다

. 창 밖의 아침은 더욱 선명해 오고 아름다운 섬처럼 떠오른다.
 한 우산 속에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정다움과 따뜻함이 새삼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 모두에게 축복 있기를.......괴로운 이에게는 사랑을. 가난한 이에게

는 넉넉함을. 병든 이에게는 쾌유를. 그리고 매마른 땅과 마음에는 단비를 내리소서....     

                  
허성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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