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은 동지(冬至)였습니다. 하지부터 길어지기 시작하여 밤이 가장 긴 날이 곧 동지입니다. 이렇게 밤이 가장 긴 동지는 역설적으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 날입니다. 그래서 동지를 일양시생(一陽始生)이라고 합니다. 陽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하지는 일음시생(一陰始生)입니다. 옛 어른들은 이를 두고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고 노래했습니다.
동양철학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10개의 천간(天干) 즉 갑을병정...과 12개의 지지(地支) 즉 자축인묘...는 음양이 번갈아 가면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컨대 갑이 양이고 을은 음이요 병이 양이고 정은 음입니다. 지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타고난다는 사주팔자는 이런 천간과 지지의 8자의 조합입니다.
동양에서는 이렇듯 상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관조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음과 양이 계속 교차하면서 변화를 일으키고, 겉으로 보이는 양의 이면에는 음이 싹트고 있다는 식입니다. 역학(易學)이라고 할 때 易은 바꾸다, 변하다 등의 뜻으로서 색깔을 자주 바꾸는 도마뱀을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이런 사유의 과정을 거쳐 중용과 절제, 겸손 등의 미덕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연스레 자리잡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런 미덕을 실천한 대표적인 사례로 ‘경주 최부자집’을 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부잣집이라도 3대를 넘기기 어렵다고 하는데, 최근까지 12대 400년간 부를 이어온 가문입니다. 이 집안에 내려오는 육훈(六訓)과 6연(六然)은 가슴에 새겨볼만 합니다.
1.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은 하지마라. 2.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3.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4.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5.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삼 년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6.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 六訓은 어떻게 최부자집이 그토록 오랜 세월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부를 지켜올 수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六然은 중국의 한 학자가 밝힌 내용을 가솔들이 지켜야 할 지침으로 삼은 것입니다. 1.자처초연(自處超然)-스스로 초연하게 2.처인애연(處人靄然)-남에게 온화하게 3.무사징연(無事澄然)-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4.유사참연(有事斬然)-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5.득의담연(得意澹然)-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6.실의태연(失意泰然)-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이 육훈과 육연의 공통점은 바로 중용과 절제, 겸손인 것 같습니다. 넘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주변사람을 존중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의 공직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왠지 부끄럽습니다.

정읍경찰서장 총경 진교훈